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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겨울속에 숨은 미학

by 훈 작가 2024. 1. 1.

아름다움에 시선이 끌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 때문에 아름다움이 사라진 후 그 모습은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모든 아름다움의 이면에 감추어진 어둠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른 척하거나 외면합니다. 좋은 것만 보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으니 굳이 뭐라고 할 이유가 없습니다. 뜨락에 떨어진 시들고 추한 꽃잎을 보고 다가가 반기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이런 측면에서 인간은 추한 모습을 싫어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계절마다 본래의 아름다움이 연출됩니다. 빛의 미학과 따뜻한 사랑이 그려낸 화려함입니다. 온갖 색이 지닌 개성과 멋스러움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고 즐겁게 해주는 건 자연의 미학입니다. 하지만, 겨울은 화려한 색의 무대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름다웠던 꽃들의 색을 다 지워버립니다. 질투의 여신이 지배하는 계절인지 몰라도 냉정하기 짝이 없습니다. 


색의 향연이 사라진 무대, 남아 있는 색은 사랑받지 못했던 색들입니다. 겨울은 화려함을 대변하던 색들의 무대가 아닙니다. 무지개빛 영롱한 온갓 색들이 살아 숨 쉬던 공간은 삭막해졌고, 무대 뒤에서 자존감을 죽이고 지내던 색들이 숨쉬기 시작했습니다. 추해 보이는 색들이 이제 서야 세상을 활보합니다. 색의 존재감이 화려함은 없고, 어둡고 그늘진 곳에서 움츠려 있던 색들입니다.

화려했던 날들은 지나갔습니다. 몸도 마음도 움츠러드는 계절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화려한 삶을 동경합니다. 그런데 겨울은 그걸 허용하지 않습니다. 대신 소박하고 수수한 삶이 화려함을 누렸던 공간을 차지합니다. 상대적으로 아름답지 않은 시간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인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화려한 색의 조화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눈이 내리는 날이면 추해 보였던 것들이 독특한 개성으로 겨울 미학을 그려냅니다.


눈이 내리지 않은 겨울, 우울한 회색빛이 대부분입니다.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 보이고 고독한 그림자가 스며든 풍경입니다. 좋게 보면 수수하고 고즈넉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따뜻한 시선으로 다가가면 추하게 보일 수 풍경도 아름답게 보이게 만드는 매력이 겨울 속에 있습니다. 은은함입니다. 이 때문에 겨울은 감탄사나 화려한 미사여구를 꺼내어 반길 만큼은 매력적인 계절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겨울은 외모를 추하게 합니다. 이는 사람만이 아닐 겁니다. 자연의 법칙에 순응해야 하는 모든 생명체는 비슷합니다. 겨울이 화려한 날의 아름다움을 빼앗아 가도 멋을 빼앗기면 안 됩니다. 멋은 아름다움과 달리 추하지 않게 가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멋은 꾸민다고, 화려해지지 않습니다. 오랜 수양과 덕을 쌓으면 좋은 인상과 미소로 나타납니다. 내면의 멋은 곧 너그러움과 인자한 아름다움입니다.


눈이 내린 허허벌판, 숲이 보입니다. 푸르름이 다 지워졌습니다. 어두운 갈색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멋있어 보입니다. 보는 이에 따라 아름답게 느낄 수 있습니다. 만약 아름답게 보인다면 본질은 흰색입니다. 흰색은 어떤 색이든 돋보이게 해 줍니다. 다른 어떤 색과도 어우러져 조화를 이룹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화려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 있습니다. 그 어떤 색도 보여줄 수 없는 힘입니다. 

겨울이 지나면서 나이를 먹습니다. 한 살을 더 한다는 것은 성숙해지는 것이고, 그만큼 멋지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하는 겁니다. 한마디로 말해 겨울은 나이 듦의 미학을 깨닫게 해주는 계절인 겁니다. 나만 돋보이게 하려고 하는 세상, 겨울은 그런 세상을 배격합니다.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다면 겨울 속에 숨은 지혜와 멋을 배워, 내면의 나를 더 멋지게 만들어야 합니다. 나이는 그냥 먹는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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