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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흑백이 만든 미학(美學)

by 훈 작가 2024. 1. 25.

바둑은 흑과 백이 번 갈아 두는 게임입니다. 누가 집을 많이 짓느냐에 따라 승부가 결정됩니다. 바둑을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비유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선 삶과 죽음이 존재합니다. 흑과 백의 오묘한 조화 속에 보이지 않는 치열한 다툼(공격과 방어)이 있고, 그 과정에 타협과 절충도 있습니다. 뻔한 꼼수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묘수도 있습니다. 때로 과욕을 부리면 악수를 자초합니다. 마치 우리의 인생살이 비슷한 선택과 결정이 매 순간 있기에 인생의 축소판이라 하는 모양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도 흑백의 조화가 있을 겁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항상 밝은 날만 있지는 않습니다. 삶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여기저기 어둠이 드리워져 있던 시간도 적지 않습니다. 그 어둠의 수렁이 깊어 아픔과 좌절의 시간도 있고, 반대로 기쁨과 환희시간도 많았을 겁니다. 분명한 것은, 어둠의 터널을 지나면서 아픔을 이겨냈기에 지금의 삶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이란 그림은 원하든 원하지 않던 흰색(명)과 검은색(암)의 조화로 그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겨울은 어둠의 시간이 긴 계절입니다. 낮보다 밤이 더 길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겨울은 태양의 시간이 아니라 달과 별의 시간이라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차가운 공기가 공해와 미세먼지로 얼룩진 하늘을 깔끔하게 닦아 밤하늘의 수많은 별빛이 어둠과 조화를 이루며 그 어느 계절보다 환상적인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겨울은 이처럼 흑과 백의 조화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동시에 아름다운 조화로 낭만적인 계절을 만들어 냅니다.

겨울이 오면 무엇보다 눈이 기다려집니다. 아마도 눈을 많이 기다리는 때가 크리스마스 때일 겁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언제나 기다려지는 우리 모두의 로망입니다. 눈을 싫어하는 사람일지라도 이때만은 눈이 오길 기다릴 겁니다. 겨울 이 우리에게 주는 낭만적인 감성은 그만큼 우리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 줍니다. 그만큼 눈이 지니고 있는 감성이 우리의 정서적 공간을 크게 차지하고 있는 방증이 아닐까 여겨지는 이유입니다. 


어둠(검은색)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색을 삼켜버립니다. 그런데 겨울에 내린 눈(하얀색)만은 예외입니다. 왜 그런 걸까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우주의 별들이 품고 있는 신비로운 영혼의 빛을 담아 내려오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눈을 오래전부터 색으로 표현해 왔고, 그렇게 인식해 왔기에 하얀 눈이 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눈은 색이 아니라 먼 우주에서 내려오는 별빛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밤에 내리는 눈을 어둠이 삼킬 수 없는 겁니다. 

빛은 우리에게 희망이고 생명입니다. 빛은 어둠과 조화를 이루며 세상의 모든 삶을 존재하게 합니다. 하지만 이런 빛도 어둠 속에서 태동합니다. 일상을 깨우는 여명이 그렇고,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도 그렇게 태어납니다. 다시 말하면 흑과 백의 조화 속에서 모든 게 존재하고 살고 있는 겁니다. 이렇듯 어둠의 시간이 지나야 빛의 시간이 오고, 이들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게 세상의 이치입니다. 즉, 흑과 백의 시간은 곧 음과 양의 조화인 겁니다. 


겨울에는 무지갯빛 처럼 영롱하고 아름다운 사진을 담기 어렵습니다. 자연이 연출한 다양한 색이 사려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색감이 화려하지 않더라도 한 폭의 수묵화처럼 그럴듯한 풍경을 찍을 수 있습니다. 흑백의 농염만으로 겨울의 미학을 표현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 비결은 흑과 백의 밝음과 어둠을 잘 조화시켜 이미지를 담아내는 겁니다. 어차피 겨울은 시선을 끄는 유혹적인 색이 없으니 여러 색의 조화가 만든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밤사이 눈이 많이 왔습니다. 내린 눈이 얼어붙어 좀처럼 보기 드문 멋진 아침을 그려냈습니다. 겨울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초라해 보였던 나무가 하얀 롱패딩을 입은 듯 멋집니다. 눈꽃이 피지 않았으면 어둠에 묻혀 안 보였을 겁니다. 겨울 속의 흑백의 조화가 아니면 보기 어려운 풍경입니다. 마치 겨울 왕국의 주인공 엘사처럼 멋진 겨울 패션을 선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세상은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아름답습니다. 제발 흑이니 백이 대립하는 세상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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