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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하얀 마음이 어디로 갔을까?

by 훈 작가 2024. 1. 28.

눈이 좋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눈을 기다렸습니다. 왜 좋아했는지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왜 좋아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냥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그땐 굳이 왜 좋아했는지 이유를 알 필요도, 생각할 필요도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동심의 세계는 어른들처럼 이성적인 생각과 논리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눈이 오는 날이면 동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릅니다. 아이들은 하나둘씩 동구밖 공터에 몰려듭니다. 금방 놀이터가 되어 야단법석입니다. 여기저기 손으로 눈을 뭉쳐 굴립니다. 눈 뭉치가 점점 커지고 눈사람이 만들어집니다. 다른 쪽에서는 편을 갈라 서로 눈싸움하며 신나게 놉니다. 뭐가 그리 좋은지 즐거운 웃음소리가 온종일 메아리칩니다.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눈은 아이들의 소울메이트가 된 것처럼 친구가 됩니다. 손이 시리고 발이 꽁꽁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도 상관없습니다. 겨울은 세상을 춥고 얼게 만들어도, 동심의 세계만은 그렇게 만들지 못합니다. 그것은 바로 겨울왕국의 요정 같은 눈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렇듯 눈은 겨우 내내 어린아이들의 마음을 하얗게 만들 겁니다.

어른들은 다릅니다. 하얀 마음이 언제부터인지 없어져 버렸습니다. 눈이 온다고 좋다고 환호성 치는 어른도 없습니다. 눈을 좋아하는 어른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내린 눈이 얼어붙을까 얼른 치워버립니다. 출퇴근길 걱정도 합니다. 심지어 교통체증 때문에 짜증 내기도 합니다. 어릴 적엔 안 그랬는데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누구나 눈 같은 하얀 마음을 갖고 이 세상에 옵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가면서 얼룩진 마음이 되어갑니다. 순수했던 하얀 마음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겁니다. 우리 마음속에 빛나던 눈 같은 순수함을 지키지 못하고 잃거나 빼앗겨 버려서 그럴 겁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빼앗아 갔는지 혹은 잃어버렸는지 찾으려 하지 않는 것도 이상합니다.

다시 찾아온 하얀 계절. 기다렸던 눈이 날립니다. 생각납니다. 눈을 하염없이 좋아했던 어린 시절 내 모습. 그런데 그 어린이는 지금 어른이 되어 창밖에 함박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눈을 좋아했는데 내가 왜 이렇게 변했지. 그때나 지금이나 내리는 눈은 변한 게 하나도 없는데. 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아파트를 나섰습니다. 쏟아지는 눈이 하얀 팝콘처럼 휘날립니다. 눈 속을 걸어봅니다. 눈이 싫어서인지 오가는 사람이 안 보입니다. 공원 숲길도 적막하기 짝이 없습니다. 소나무가 울창한 공원 숲 산책길에 나 홀로 여행자가 된 것처럼 겨울 나그네가 되어 봅니다. 쓸쓸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겨울 요정들이 만들어 낸 하얀 세상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녀석들이 잃어버린 하얀 마음을 되찾아 주려 하는지 날 반깁니다. 볼에 뽀뽀도 해주고, 손도 잡아 줍니다. 요정들이 노래도 불러 주는 것 같습니다. 옛날 즐겨 불렀던 동요 ‘파란 마음, 하얀 마음’이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점점 크게 들립니다. 나도 작은 목소리로 따라 불러봅니다.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여름엔 파랄 거예요. 산도들도 나무도 파란 잎으로, 파랗게 파랗게 덮인속에서 파~란 하늘 보고 자라니까요.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겨울엔 겨울엔 하얄 거예요. 산도들도 지붕도 하얀 눈으로, 하얗게 하얗게 덮인 속에서 깨끗한 마음으로 자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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