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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나는 눈꽃입니다.

by 훈 작가 2024. 1. 23.

나는 겨울에 피는 꽃입니다. 해(sun)의 감성으로 피는 꽃이 아니라, 별(star)의 감성으로 피는 꽃입니다. 나는 햇빛으로 아름답게 보이지만, 햇빛 때문에 사라지는 꽃입니다. 모든 꽃이 뜨거운 로맨스 속에 사랑을 맺지만, 나는 그 반대입니다. 나는 사랑을 열정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사랑도 냉정으로 해야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겨울의 영혼을 품은 꽃입니다. 겨울의 진실과 사랑을 담은 꽃이기도 합니다. 순수함만 품고 태어나 아름다움만 보여주고 사라지는 꽃입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화려함에 있지 않기에 나는 화려함을 거부합니다. 이 때문에 꽃으로서 유혹의 본능을 지니고 있지도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차가운 꽃입니다. 

겨울 사랑은 신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차가운 사랑이 상처를 줄지 모르니까요. 그래도 사랑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처받을지 모르고 사랑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차가운 사랑의 상처는 오래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본질은 차갑지 않습니다. 때로는 사랑이 차가울 수 있어도 영혼까지 차가운 사랑은 없으니까요. 
 
사랑의 본질은 순수(純粹)에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안에 욕망과 탐욕을 넣어 포장하려 합니다. 나는 그게 싫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피었다가 아침 빛과 함께 사라집니다. 나는 뜨거운 입맞춤도 싫어합니다. 내게 그것은 곧 이별이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차가운 사랑이라도 '순수‘의 가치를 잃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모두가 꽃과 이별하고 뒤돌아서 추억을 지워버릴 때, 누군가 사랑으로 상처를 입고 남모르게 울고 있을 때, 누군가 실연을 겪고 사랑이란 단어를 포기하고 싶을 때, 나는 그런 사람 마음속에 살며시 내려와 꽃이 되고 싶습니다. 모두가 잠든 밤 그런 사람 곁에 꽃이 되어 피고 싶습니다. 이 계절만이라도 그런 사람을 위해 꽃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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