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싸움
지영은 중복 날 오전, 미리 전화도 하지 않고 불쑥 가게를 찾았다.
“웬일이야, 출근 안 해?”
엄마가 놀라며 물었다.
“하루 휴가 냈어. 중복이라 오늘도 매우 바쁘잖아.”
“이구~ 온다고 미리 전화라도 하지. 그랬으면 알바 아줌마 부르지 않아도 되는데.”
“엄마! 그냥 좋으면 좋다고 그래. 내가 없는 것보다 낫잖아.”
“그래, 알았다. 알았어.”
엄마는 딸과 부딪치는 게 싫었다. 지영은 초복 때처럼 카운터 계산과 손님을 맞았다.. 오전 11시부터 손님이 몰려들었다. 식당 앞은 대기 중인 손님들로 북적였고 오후 3시까지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보신탕이 뭐가 좋아서 먹는지 지영은 이해할 수 없었다. 고유의 식문화라지만 가축이 아닌 개를 어떻게 먹지. 인간은 정말 섬뜩한 동물이라는 생각이야. 먹을 게 차고 넘치는 세상인데 이건 아니지.
맛있게 보신탕을 먹고 있는 손님들을 보면 야만스럽게 보이고, 엄마가 즐거워하는 표정을 보면 기분이 묘하다. 이런 모순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서 드려야 하는가. 인간은 애초부터 이런 존재인가. 지영은 못마땅했다.
“맛있게 먹고 갑니다.”
남자 두 분이 카드로 계산하고 나가며 말했다. 맛있게 먹고 간다고? 그 말이 귀에 거슬렸다. 맛있는 걸 맛있다고 해야지. 이 인간들아! 지영은 계산하고 나가는 손님들의 뒤통수에 대고 쏘아주고 싶었다.
오늘도 초복만큼 손님이 많았다. 지영은 엄마 기분을 맞추려고 애쓰며 저녁 장사 끝날 때까지 식당 일을 도왔다. 늦은 밤 엄마를 승용차로 아파트에 모셔다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이모 집에 들러 Hot Dog를 데리고 오피스텔로 왔다.
이틀 후 금요일 저녁. 엄마가 식당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지영은 아파트로 갔다. 현관에 들어서자 여느 때와 같이 엄마는 리모컨으로 홈 쇼핑 채널을 여기저기 돌리고 있었다. 엄마는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경향이 있다. 못 보던 유명 브랜드 그릇이나 주방용품들은 그 증거물이다.
지영이 엄마 표정을 살피며 소파에 앉았다.
“엄마! 재밌어?”
“재미로 보냐. 그냥 나오니까 보는 거지.”
“사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내가 좋을 걸로 사 줄게.”
“내 걱정하지 말고, 그 돈으로 시집갈 혼수 준비나 해.”
“혼수?”
“엄마! 무슨 혼수? 혼수 필요 없어, 나중에 그냥 돈으로 줘.”
“혼수 없이 어떻게 시집가. 엄마 망신시킬 일 있니?”
“알았어. 알았어. 화내지만. 그건 그렇고 보신탕집 생각해 봤어?”
“또~오 그 소리하러 왔니?”
“엄마! 솔직히 말해 봐. 난 엄마 마음이 뭔지 모르겠어.”
“그럼, 너도 솔직하게 말해 줄 거니?”
“당근이지.”
“정말 애견 카레 날 위해서 하려고 하는 거니? 널 위해서 하려는 거니?”
“말했잖아. 그럼, 엄마는 내가 시집가서 멀리 갔으면 좋겠어?”
“네가 옆에 있으면 좋긴 하지. 외롭지도 않고…. 그런데 너 결혼해서 애 낳으면 다 나한테 봐 달라고 할까, 봐, 그게 걱정이야. 그게 네 속셈이지.”
“아~, 그래서 그러는 거야. 이제야 이해가 되네. 딸이 엄마한테 육아 독박 뒤집어씌울까, 봐. 그건 절대 아니야. 난 내 새끼 내가 키우지, 다른 사람한테 못 맡겨. 엄마! 내 성격 몰라?”
“말이야, 쉽지. 주변에 자식들 육아 독박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노인들이 얼마나 많은데. 차마 자식들한테 말도 못 하고 속으로 끙끙 앓으며 시집살이 아닌 시집살이 하면서 사는 노인들.”
“난 그럴 생각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보신탕집 접고 애견 카페로 바꿔. 날 믿어, 엄마! 그럼, 된 거지?”
“지영아! 보신탕집 하는 게 그렇게 창피하니? 솔직하게 말해봐.”
“….”
잠시 머뭇거렸다. 모든 사실을 다 말해버릴까, 아니야 다 해버리면 엄마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도 몰라. 아직은 아니야.
“맞아, 사실이야.”
“사실, 엄마는 그게 더 서운해. 세상이 달라졌다고 해도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
“뭐가?”
“그 나이에 아직도 열등감 느끼며 사니?”
“그렇게 말하면 할 말 없어.”
“엄마는 그런 마음으로 사랑하는 건 반대야. 사랑은 배경이나 조건을 보고 하는 건 아니잖아. 엄마는 네가 당당했으면 좋겠어. 난 그게 화가 나.”
“엄마! 왜 성형외과가 많은 줄 알아?”
“….”
“잘 보이고 싶은 건 본능이야. 이 남자다 싶은데 놓치기는 싫고. 그럼 어떻게 해야 해? 난 바꿀 수 있는 걸 바꾸자는데 건데, 열등감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건 엄마답지 않아.”
“너, 생각보다 이기적이다. 엄마 가게를 네 생각대로 바꾸자고?”
“이기적이라고? 요즘 애들은 나보다 더 심해.”
“더 심하다고?”
“엄마! 내가 보신탕집 딸로 시집가는 게 좋겠어?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봐. 답이 나오잖아.”
“여자야 살림 잘하고 애만 잘 키우면 그만이지.”
“헐! 요즘 어떤 여자들이 살림만 하고 애만 키워. 남자들도 얼마나 계산적인데, 열이면 아홉은 맞벌이를 원해. 엄마도 이번 기회에 마인드를 바꾸라고.”
“어쨌든 자존심 때문에 보신탕집이 마음에 걸리면 네 결혼이니까, 네가 알아서 해. 혼수에 필요한 돈은 입금해 줄 테니까.”
“엄마! 꼭 그렇게 해야 해. 하나밖에 없는 자식인데 이래야 하냐고?”
“….”
“돈 필요 없어. 돈은 엄마가 고생해서 번 거니까 엄마가 다 써. 이만큼 키워 준 것 만해도 고마우니까.”
”정말 필요 없어.”
“엄마! 얼마 전까지 결혼할 생각 전혀 없었어. 하고 싶지도 않았고. 왠지 알아?”
“….”
“엄마 혼자 살아야 하잖아.”
“그걸 왜 네가 걱정해. 시집가서 너나 잘 살면 되지.”
“그럼, 누가 해?”
“….”
“여태껏 엄마 마음대로 딸을 키웠으면 이젠 내 말도 들어줄 때가 되었잖아. 왜 그렇게 고집을 피워?”
“태생이 그런 걸 나보고 어쩌라고.”
“엄마! 나 결혼 안 하고 혼자 사는 걸 바라는 거야.”
“….”
“왜, 말 안 해?”
“시끄러워. 할 얘기 다 했으면 돌아가.”
화가 난 지영이 말없이 일어났다. 답답하다 못해 엄마가 야속하단 생각까지 들었다. 더 이상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풀어야 하나? 아파트를 나오니 밤하늘에 짙은 회색 구름만 가득하다.
'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 > 중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Hot Dog(12) (136) | 2024.01.05 |
---|---|
Hot Dog(11) (109) | 2024.01.04 |
Hot Dog(9) (133) | 2024.01.02 |
Hot Dog(8) (128) | 2024.01.01 |
Hot Dog(7) (138) | 2023.12.3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