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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중편소설

Hot Dog(12)

by 훈 작가 2024. 1. 5.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자식 사랑

  지영이 이모의 전화를 받고 며칠 뒤 아파트로 갔다. 엄마가 시위로 받은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지영은 엄마가 어느 정도 심경(心境)의 변화가 있을까 궁금했다. 지영은 이모와 통화하면서 어느 정도 감은 잡았다. 모르긴 해도 기가 꺾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어쨌든 지영은 이제야 뭔가 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디, 아파?”
 “그래, 아프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럼, 나랑 같이 병원에 가 볼까?”
 “병원에 간다고 나을 병이 아니야.”
  강하게만 보였던 엄마가 오늘은 측은해 보였다. 
 “지영아!”
 “뭔데, 말해봐.”
 “갑자기 손님이 확 줄었어.”
 “그게 무슨 말이야.”
 “매상이 반토막 났다고.”
 “갑자기 왜? 
 “말복 날 있잖아, 동물보호협회인지 단체인지 하는 사람들이 몰려와한 바탕 난리를 치고 갔어.”
 “그게 무슨 말이야?”
  지영은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엊그제 말복 날 개고기 먹지 말라는 시위를 하고 갔다고.” 
 “가게 앞에서?”
 “아니, 길 건너편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왔어?”
 “한 스무 명쯤.”
 “….”
  지영은 ‘내가 뭐라고 했어. 시대가 바뀌었다고 했잖아.’라고, 말하려다 꾹 참았다.
 “여태껏 남한테 싫은 소리 한번 안 하고, 싸우고 산 일이 없는데, 그 사람들 나하고 무슨 원수가 졌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지영아!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
  엄마는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이냐. 서로 이해하고 함께 살아야 하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말하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
 “나. 그 사람들하고 원수진 거 없어.”
  울먹이는 목소리로 엄마는 하소연하듯 말했다.
 “지영아! 이번에 깨달은 게 하니 있어.”
 “뭔데?”  “여자 혼자 산다고 사람들이 무시하는 것 같아.”
 “누가 엄마를 무시해.”
 “안 그러면, 왜 우리 가게냐. 보신탕집이 여기만 있는 게 아니잖아. 내가 남편 없이 혼자 장사하니까 만만하게 본 거지.”
  지영은 말없이 엄마를 쳐다보았다. 
 “남편 없이 혼자 사는 것도 서러운데, 왜 이렇게 사람을 무시해.”
  속된 말로 엄마는 열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지영은 그런 엄마를 어떻게 위로해 주어야 할지 적절한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냥 속절없이 미안한 마음이 지영을 괴롭혔다. 
 “지영아! 네 아버지가 있었으면 나한테 이러겠니? 아마 못했을 거야.” 
 “아빠 생각나?”
 “그때 내가 조금 참아야 했는데…. 내 성질을 죽이지 못하는 바람에…. 다 내 탓이지. 그래도 네 아버지가 날 붙잡아 주리라 생각했지. 그런데 뒤도 안 보고 돌아서더니 휙 나가더라고….”
 엄마는 느닷없이 가슴에 묻어 둔 아픈 과거를 꺼냈다. 지영은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던 아버지 이야기다. 
 “이혼하고 큰 상처를 받았지, 그런데 아플 겨를이 없었어. 정신 차리고 보니까 아무도 죄 없는 네가 눈에 보이더라고. 미안했지. 널 아버지 없는 자식으로 키워야 하는 게, 너무 무거운 죄로 가슴에 와닿았어. 그 죄가 날 버티게 해 준 거야. 너 아니었으면 엄마도 어떻게 되었을지 몰라.”
 “엄마! 옛날 일은 다 잊어.”
 “다 잊었었지. 그런데 시위가 있던 날 문득 생각나더라고.” 
 “엄마! 그러지 말고 재혼하는 게 어때? 난 찬성이야.”
 “재혼? 너 엄마 성격 잘 알면서 그런 소리하니.”
 “그게 아니라 오늘따라 엄마가 너무 외로워 보여서 그래.”
 “며칠 전 네 이모랑 통화하면서 신세타령 좀 했지.” 
 “잘하셨어. 그렇게라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화병 나.”
 “이모가 그러더라. 이번 기회에 보신탕집 때려치우라고. 왜 남들한테 욕먹는 걸 하면서 사느냐는 거야,”
 “그래서?”
 “처음엔 그 소리가 너무 섭섭하게 들리더라고. 그랬는데 이모 하는 말이 돈도 벌 만큼 벌었는데, 왜 궁상맞게 보신탕집 하느냐는 거야. 자기 같으면 차라리 다른 걸 하겠다는 거야.”
 “그게 뭔데?” 
 “지영이 네가 얘기하던 애견 카페.”
 “엄마는 뭐라고 했어?” 
 “무서워서 싫다고 했지. 옛날에 개한테 물린 거 몰라서 그런 소리하냐고.”
 “엄마! 치료하면 돼. 아무것도 아니야. 왜 무서워해.”
 “병원에 다니면 너무 돈이 많이 들잖아. 그렇다고 이게 낫는다는 보장이 있니?”
 “믿어야지. 의사를 못 믿으면 어떡해.”
 “….”
 “의사를 못 믿으면서 엄마는 어떻게 날 더러 의대 가라고 한 거야.”
 “그건 의사가 돈 많이 버는 직업이니까 그렇지.”
 “헐! 돈 많이 버는 직업이라서~. 말도 안 돼.” 
 “뭐가 말이 안 돼. 돈이 최고지. 이 세상에 믿을 건 돈밖에 없어. 네가 아직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래”
 “됐어. 그만, 그만해. 신경외과 하는 친구 통해서 내가 한번 알아볼 테니까 돈 걱정하지 말고. 나랑 같이 한번 같이 가. 알았지?” 
 “….”
 “왜 말이 없어.”
 “그래, 한 번 가 보자.”
 “진작 그렇게 말하지. 하여튼 엄마는 참 어려워.”
 “그나저나 남자 있다며?” 
 ”왜? 결혼하면 엄마 곁을 떠날까, 봐서. 걱정하지 마. 그런 일 없을 테니까.”      
 “지영아! 말이라도 고맙다. 그래도 그게 아니야. 여자는 남자한테 가야지. 어쩔 수 없어. 결혼은 내 욕심만 부리면 행복할 수 없어. 여자가 다소곳이 남자에게 맞추어야 행복해.”
 “엄마! 내가 걱정돼.”
 “네가 너무 날 닮은 것 같아서 그래.”
 “하하하. 어떻게 알았어. 엄마 닮은 거.”
 “그걸 모르면 엄마가 아니지. 어쨌든 사랑은 유리잔에 담긴 포도주라고 생각해. 자칫 자존심 내세우다 깨지면 상처만 남으니까 서로 조심해야 해.”
 “알았어. 엄마!”        
 “왜 이런 말 하는지 알지?”
 “알았어.” 
 “결혼은 언제 할 생각이니?”
 “내년 봄.”
 “그래, 축하해. 우리 딸.”
  지영은 한결 부드러워진 엄마 말에 뭉클했다. 
 “잘 생겼니?”
 “궁금해?”
 “하긴 네 신랑 될 사람이니까 너 좋으면 그만이지. 강아지는 잘 있냐?”
 “그럼.”
 “녀석에게 다 나으면 많이 사랑해 준다고 그래.”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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