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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중편소설

Hot Dog(13)

by 훈 작가 2024. 1. 6.

그날의 진실

    시위 당일 지영은 멀리서 지켜보았다. 모든 걸 감수하겠다고 생각하며 결정한 일이었다. 용서받지 못할 일인 것을 잘 알면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은 이기적이다 못해 독한 여자다. 왜 이래야만 했는지 진실을 죽을 때까지 가슴에 묻고 살겠다고 지영은 마음먹었다.      

    시위 일주일 전. 지영은 다음 주 금요일 저녁 7시에 임시회의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문자로 안내된 안건은 말복에 맞추어 개 식용 반대 시위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작년에는 초복에 맞추어 세종시 농림축산식품부 청사 앞에서 시위했었다. 그때는 하루 휴가를 내고 참석했었다. 
    지영은 시위계획이 없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잘 됐다 싶어 말복에 맞추어 오빠와 같이 여름휴가나 갈 생각으로 전화를 해 보려던 참이었는데 카톡 문자가 날아왔다. 하마터면 오빠에게 실없는 사람이 될 뻔했다. 모처럼 애인과 달콤한 밀애를 즐기려 했는데 아쉬움이 밀려왔다. 
    협회 사무실에 들어서니 불금인데도 의외로 회원들이 많이 참석해 놀랐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자 바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협회 간사가 회의를 시작하겠다고 하자 회장이 일어섰다. 먼저 개인적인 사정으로 회의 일정을 늦게 잡게 되어 죄송하다고 말을 꺼낸 다음 바로 안건 협의에 들어갔다.
    성남시 모란시장에서 하자는 의견이 먼저 나왔다. 서울에서 가깝고 시위효과도 어느 곳보다 클 것이라는 얘기였다. 이에 대해 우려하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상인들의 극렬한 반발이 예상되고 물리적 충돌이 부담스럽다는 의견이었다. 3년 전에도 한 회원이 다쳐 입원했던 것까지 말하자 여성회원들이 꺼리는 분위기였다.
    오송에 있는 식약처가 어떠냐는 의견도 나왔으나 작년에 세종까지 내려갔으니, 이번에는 서울에서 하자고 의견에 밀렸다. 그때 “보신탕집 어때요?” 하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애견 카페를 운영하는 총무였다. 사회를 보던 회장이 좋은 의견이라고 하자 그쪽으로 분위기가 기울었다. 
    막상 보신탕집에서 시위하기로 결정되니 장소가 문제였다. 회원들끼리 수군거렸다. 보신탕집이 대부분 시장 골목 아니면 좁은 골목에 있어 시위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얘기였다. 회의 진행을 맡은 회장이 손을 들고 적합한 보신탕집을 추천해 달라고 말했다. 누구도 손을 들지 않고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보신탕집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지영은 어떻게 할까 망설였다. 손을 들고 싶은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손을 들 수 없었다. 한편으로 ‘그래. 어쩌면 이게 기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아니야 엄마한테 이러면 안 돼.’ 하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서로 다투었다. 
 “추천할 장소 없습니까?”   회장이 말했다. 지영이 자존심이 무릅쓰고 용기 내어 손을 들었다. 
 “하지영 씨! 말해 보세요.”
 “저~어. 우리 가게 앞에서 해요.”
    회원들이 모두 놀란 표정으로 지영을 보았다. 순간 지영은 얼굴이 화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사실, 저의 집 보신탕집 해요. 다른 식당에서 하느니 차라리 우리 가게 앞에서 하는 게 좋겠어요.”
  조용한 분위기 속에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매우 창피했어요. 자존심도 상했고요.”
     지영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저~어, 하지영 씨! 괜찮겠어요?”
     회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회장님! 괜찮지는 않겠죠. 누가 봐도 저를 못된 딸로 볼 텐데….”
 “하지영 씨! 그러지 말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게 어때요?”
    회의록을 정리하던 간사가 말했다.
 “그간 엄마와 업종전환 문제로 많이 싸웠어요, 지금은 강아지 키우는 문제로 혼자 나와 따로 살고 있고요.” 
    지영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엄마가 보신탕집을 정리하면 함께 애견 카페도 하고 동물병원을 할 생각이에요. 제 꿈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주세요. 대신 저는 그날 참석하지 않겠어요. 부탁 하나 드릴 게 있어요. 저의 엄마 성격 만만치 않으신 분이에요. 어떤 경우에도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게 해 주세요.”

    그날의 진실 뒤에 비밀이 있었다. 당시 지영은 뱃속에 새로운 생명을 품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했다. 여러 날 거듭 생각해 봐도 엄마에게 말할 자신이 없었다. 지영이 엄마에게 가장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일이 혼전 임신이었다. 
    덜컥 겁이 났다. 엄마가 눈치채면 어떡하지? 지영은 조급했다. 엄마를 설득하는 건 어렵고 상견례 날짜는 잡아야 하는 상황에 임신이라니…. 지영은 졸지에 쫓기는 상황이 되었다. 무슨 수를 내야만 했다. 때마침 개 식용 반대 집회는 지영에게 절호의 기회였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엄마도 긴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왔다. 모든 건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세월은 지난 일을 블랙홀 같은 늪으로 삼켜버렸다. 때로는 망각이 우리의 삶을 평화롭게 만든다. 
  엄마는 지금도 진실이 품고 있는 실체를 모른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을 지영은 믿었다. 이기적이라고 해도 변명하고 싶지 않았다. 무모한 결정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행복이 없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영은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이 자리가 옛날에 보신탕집 자리 아니었나요?” 하는 고객들이 가끔 있다. 그럴 때마다 지영은 “아마 그럴 거예요.”하고 웃으면서 넘겼다. 하지만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왜냐하면 현재 상황이 역설적인 측면도 있는 것 같고 소설처럼 반전의 장면처럼 생각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지영은 가끔 Hot Dog와 장난치며 놀고 있는 엄마를 보면 지난날이 생각난다. 도대체 강아지 한 마리가 뭔데 엄마와 내가 그렇게 지냈어야 했나 생각하며 자책할 때가 있다. 스스로 철이 든 것인지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한두 번 아니다.
    취미로 사진이나 배우고 싶어 OO 구청에서 운영하는 평생교육문화센터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클릭하자마자 반려동물 수기를 공모하는 안내 문구가 홈페이지 앞에 뜬다. 무슨 내용인가 자세히 읽어 보았다. 
     Happy 때문에 겪었던 사연을 써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재주는 없지만 아래아한글을 불러왔다. 제일 먼저 그날이 떠올랐다. 몰래 숨어 시위 현장을 지켜보며 울었던 생각난다. 이어 엄마와 갈등을 빚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생각나는 대로 자판을 두드렸다. 순식간에 써 내려간 글이 컴퓨터 화면이 까맣게 채워졌다. 다 쓰고 보니 고해성사였다. 다시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잘 쓴 글인지는 모르지만 솔직하게는 쓴 것 같았다. 
    내용은 별거 없다. 엄마에게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쓰기 시작했다. <엄마! 나쁜 딸을 용서해 줘. 미안해 엄마! 그땐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어. 그리고 고마워. 내가 엄마 딸이어서 …. 엄마! 정말 사랑해, 아주 아주 많이, 앞으로 좋은 딸로 엄마랑 오래오래 같이 살 거야. 약속할게.>라고 끝을 맺었다.
    마음이 너무 후련했다. 응모해 볼까, 생각하니 자신이 없다. 나중에라도 엄마가 알게 되면 섭섭해할 것 같다. 그러나 오래전 얘기다. 그리 감동을 주는 이야기도 아닌데 응모할 필요가 있을까. 망설였다. 일단 써 놓은 글이니 큰 기대는 하지 말고 보내보기로 하고 이메일로 보냈다.
    잊고 있었는데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우편으로 받았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수상 수상자라니! 로또를 맞은 기분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뻥 치지 말라며 믿지 않던 남편이 소가 뒷걸음질 치다 생쥐 잡은 격이라며 놀렸다. 어쨌거나 정말 기분 좋은 날이다. 
    다섯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시상식에 다녀왔다. 상패와 부상으로 애견용품 상품권을 받았다. 흥 소리가 절로 나왔다. 폭스바겐 SUV 차를 주차하고 동물병원으로 가는 중이다. 분식집 앞을 지나가는데 아들이 잡고 있던 오른손을 놓으며 말했다.          
 “엄마! 핫도그(Hot Dog) 하나 사 줘.”
 “핫도그(Hot Dog)? 푸~ 하하하.”
    지영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반려동물 수기에 응모한 글 제목이 <Hot Dog>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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