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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사리진 풍경(1)

by 훈 작가 2023. 3. 9.

당신은 항상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습니다. 늘 변함없는 그 모습으로 날 반겨주리라 생각했던 거죠. 그게 착각이고 오류였습니다. 세상은 늘 변하는 것인데 당신만은 그렇지 않을 거라 여겼거든요. 감당할 수 없는 세월의 무게를 견디었던 당신의 삶을 간과했던 거지요. 500여 년의 시간을 품고 지켜왔던 당신이었기에 적어도 당신만은 우리 곁에 더 있어 주리라 생각했습니다. 

당신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따라 아련한 슬픔이 밀려옵니다. 존재하는 것은 언젠가 사라지는 법. 우리 그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데 그 또한 인간이 지닌 본성일지도 모르죠. 존재란 인간의 삶 속에서만 규정한 개념에 불과하니까요. 이렇게 슬퍼한다고 되돌리수 없는 일이지만 당신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위선적인 것 같아 부끄럽기만 하네요.  

인간은 살아 숨쉬는 사물의 존재속에 생명을 불어넣고 그 상대적인 개념을 죽음으로 정의하며 살고 있잖아요. 당신의 관점이 아니라, 인간의 관점에서 당신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인간만의 이기적인 모순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도 어쩔 수 없이 그런 관점에서 당신에 대한 감정을 쏟아 낼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게 바로 아련한 슬픔이랍니다. 사리지는 것들에 아픔을 같이 공감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데... 

※ 농촌풍경과 밤하늘 은하수 사진 촬영 장소로 보은군 마로면 원정리의 느티나무가 최종 고사(枯死) 판정받고 보호수에서 2021년 4월 27일 해제되었습니다. 수령 500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나무는 1982년 8월 보은-6호 보호수로 지정돼 보은군의 관리를 받아왔습니다. 이젠 더 이상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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