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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사라진 풍경(3)

by 훈 작가 2023. 3. 11.

 

 
광활한 초원지대가 눈앞에 펼쳐졌다. 어른 키만 한 풀숲 사이를 헤치며 길을 따라 걸었다. 삘기 꽃밭이 펼쳐진 벌판이 지평선을 이룬다. 무릎 정도까지 자란 하얀색 삘기 꽃이 마치 넓은 억새밭처럼 군무를 이룬다. 이처럼 많은 삘기 꽃은 처음이다. 이렇게 광활한 초원풍경이 우리나라에도 있다니 그저 놀랄 일이다. 정말 장관이다.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에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옅은 어둠 속 지평선 끝에 옅은 안개가 솜이불처럼 깔려 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 눈앞에서 나는 짧은 감탄사를 토해냈다. 그때 앞쪽 풀 숲 속에서 활들 짝 놀라 뛰어나가는 야생동물의 소리에 깜짝 놀랐다. 고라니인지 노루인지 비슷해 보이는 녀석이 저 멀리 달아난다.

탄자니아 사바나 초원지대를 연상케 하는 풍경이다. 그런 느낌을 들게 한 것은 여명의 끝 지점에서 시작한 일출 빛이다. 눈에 보이는 풍경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동물의 왕국에서 보던 세렝게티 초원을 닮았다. 분명 아프리카가 아닌데 나는 그런 착각 속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황홀함 때문이다.
 
환상과 황홀함 사이를 오가며 셔터 맛을 즐기는 동안 사바나 초원지대 탐험가처럼 삘기 꽃밭을 누비며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착각이든 환상이든 무슨 상관인가. 자유는 인간이 상상과 현실에서 누리는 최고의 가치다. 이 순간 사진의 즐거움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빠져드는 유혹을 뿌리칠 이유 없다. 그냥 좋다.

달콤한 희열이 렌즈 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사이 풀잎에서 깨어난 이슬이 격하게 달려들었다. 난 이슬 요정과 애정행각을 벌이며 황홀경에 푹 빠져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요정들이 달려든다. 어느새 무릎까지 젖었다. 이별의 순간, 끝내 이슬이 흘린 눈물이 신고 온 양말까지 흘러내렸다. 발이 축축하다. 사진이 도대체 뭔데~
 
자연은 곧 어머니의 품이다. 어머니는 항상 위대하다. 그뿐인가. 모든 생명체의 보금자리는 그 품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자연을 찾고, 자연을 노래하고, 자연을 지키고, 자연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걸 잊는다는 건 인간이 지닌 정체성을 부정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그런데 우리는 알면서도 자연을 왜 자꾸 망가뜨리고 있는 걸까. 지금 이곳이 사라지고 있다. 이 일대가 송산그린시티로 개발되어 6만 세대 15만 명 규모의 신도시가 들어설 예정이다. 우리 주변에는 사라져 가는 게 너무 많다. 왜 우리는 끝없이 자연을 파괴하고 있는가. 언젠가 자연으로부터 버림을 받을지도 모르는데. 그것이 너무 두렵다. 그 탐욕의 끝이 어딜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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