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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에세이

세뱃돈의 추억

by 훈 작가 2024. 2. 11.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설날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세뱃돈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풍요롭지 않았던 시절, 용돈이 따로 없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차례상을 차리고, 조상님께 차례를 지냅니다. 빨리 끝났으면 하는데 생각보다 길게 이어집니다. 차례가 끝나자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이 왔습니다. 세배를 올릴 시간입니다. 세배가 끝나면 세뱃돈을 받습니다.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너무 행복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세뱃돈을 받기가 무섭게 엄마의 눈빛이 달라집니다. “세뱃돈 내 놔. 너희들은 아직 어려서 큰돈이 필요 없어. 엄마가 맡았다가 필요하면 줄게.” 어떤 때는 저금했다가 나중에 주겠다고 말하면서 세뱃돈을 모두 빼앗아 가셨습니다. 이때만큼 엄마가 얄미웠던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 돈을 필요할 때 주셨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늘 받기는 했지만, 세뱃돈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차례상에 올려진 맛있는 음식으로 서운함을 달래어 봅니다. 그나마 밥상 위에 올라온 진수성찬 같은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그런데 동네 아이들을 만나면 또 기분이 상합니다. 서로 세뱃돈을 얼마 받았느니 자랑하며 우르르 구멍가게로 몰려가 먹고 싶었던 과자를 골라 사 먹는데, 이를 물끄러미 지켜보고만 했었습니다. 엄마한테 떼를 써 보고 싶었지만, 결과가 너무 뻔할 것 같았습니다.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야속했던 어머니의 마음을 세월이 지나서 알았습니다. 빠듯한 살림에 세뱃돈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5남매 학교 보내며 생활하는데 적지 않은 돈이 들었을 겁니다. 한 푼이라도 절약하고 아껴야 했던 어머니로서는 자식들이 받은 세뱃돈을 허투루 쓸까, 염려되어 그리하셨을 겁니다. 사실 경제관념이 없었을 철부지 나이이니 이해되는 측면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아마도 그 시절의 설 명절은 비슷했을 겁니다. 

지금은 세뱃돈을 주는 처지입니다. 한때는 주어야 하는 세뱃돈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었습니다. 적게는 몇십만 원이 나가야 했으니까요. 그나마 종각 시절엔 그것도 행복이었습니다. 어린 조카들이 세뱃돈을 받고 마냥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어릴 적 그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세뱃돈을 받던 그 시절 그 즐거움이 아주 먼 과거의 추억이 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아마 요즘 엄마들은 세뱃돈을 옛날 엄마처럼 빼앗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뭐든지 옛날에 비해 물질적으로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풍요로워졌습니다. 그만큼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돈에 대한 경제적 개념도 많이 달라진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돈이란 게 쓰기는 쉬워도 벌기는 어렵습니다. 물질적 풍요는 소비 개념을 자극해 욕망을 자극합니다. 남들처럼 누리고 싶고, 먹고 싶고, 갖고 싶은 게 너무나 많은 세상입니다. 자본주의가 나은 물질 문명과 혜택을 돈만 있으면 마음껏 누를 수 있는 세상입니다.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이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계층 간 빈부의 양극화가 날로 크게 벌어지고 있고, 많은 범죄의 원인이 돈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돈의 유혹이 널려 있습니다. 소비는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이 너무 잘 압니다. 돈만 주면 뭐든지 손에 넣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돈은 소비의 개념이 아니라 노동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 주어야 합니다. 이런 교육이 없다 보니 돈은 허투루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돈에 대한 개념(경제개념)을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다.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돈은 어떻게 버는지 제대로 아이들에게 말해 주어야 합니다. 하다못해 용돈 노트를 쓰는 습관이라도 알려주어야 합니다. 무엇에 썼는지, 돈을 쓰게 된 목적이 뭔지, 제대로 썼는지 낭비인지, 스스로 깨닫도록 하면서 돈의 소중한 가치를 인식시키는 것부터 어른들이 알려주어야 합니다.

요즘은 세뱃돈으로 얼마를 주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짐작하건대 중고생은 5만 원, 20대 대학생이면 적어도 10만 원은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집안에 친지들이 많으면 받는 세뱃돈이 적지 않은 금액일 겁니다. 하지만, 예전 엄마들처럼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스스로 책임지고 보다 합리적인 경제활동(소비)을 할 수 있도록 엄마들이 현명하게 지도해 주는 것이 좋은 교육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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