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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에세이

커피 한 잔의 행복

by 훈 작가 2024. 2. 15.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누군가는 비가 오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가수 심수봉은 그런 사람들의 옛 추억을 떠올리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언제나 슬픈 사랑의 추억은 비와 사뭇 잘 어울립니다. 비와 추억의 옛사랑은 낭만적이고 슬픈 사랑의 드라마 같은 분위기를 연상케 합니다. 그런 분위기에 젖다 보면 나도 모르게 기억은 추억의 냄새를 찾아갑니다.

비 오는 날 잘 어울리는 게 또 있습니다. 따뜻한 한 잔의 커피입니다. 딱히, 정확한 이유는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윽한 커피 향이 평소와 달리 코를 진하게 자극합니다. 이런 생각은 나만이 아닐 겁니다. 분위기 좋은 카페의 창가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창밖을 보면 나도 모르게 감성에 젖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비는 젖게 합니다. 갈증에 메마른 대지를 촉촉하게 젖게 하고, 가라앉은 내 마음도 젖게 합니다. 우울하게 밀려들 것 같은 추억의 그림자를 피하고 싶어 원두커피 한 잔을 내렸습니다. 역시 커피 향이 장난이 아닙니다. 순간 먼발치서 달려오던 회색 그림자가 사라집니다. 추억의 냄새가 커피 향에 묻혀 모습을 감춥니다.

커피잔을 들고 거실 창가 쪽으로 다가가 밖을 봅니다. 커피 향이 후각을 자극하며 다시 추억의 그림자를 불러냅니다. 아련했던 기억 속에 추억이 강제로 소환당합니다. 과거 속에 저장되었던 희미한 흑백 동영상이 재현됩니다. 까까머리의 한 소년이 보입니다. 비를 졸졸 맞으며 논 사이로 난 진흙 길을 걸어 학교로 가고 있습니다.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파란 비닐우산을 쓴 동네 친구들이 보입니다. 혼자서 쓰고 가는 아이들이 없습니다. 요즘같이 좋은 우산은 부잣집 아이들이나 쓰고 다녔습니다. 나처럼 비를 맞고 가는 아이도 많았습니다. 어떤 친구는 찢어진 비닐우산을 썼지만, 비가 새어 옷이 젖은 채 쓰고 갑니다. 그 시절엔 왜 우산이 귀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신작로 길을 걸을 때입니다. 등굣길에 버스를 만나지 말아야 하는 데 가끔은 얄궂게 피할 수 없습니다. 버스가 빗물이 고여 있는 곳을 지나갈 때면 흙탕물이 튀어 낭패를 본 적이 많습니다. 피하려 해도 내 맘 같지 않습니다. 그때를 떠올리니 새삼스럽습니다. 세월의 시간은 인생의 시간을 많이 과거로 만들었습니다.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비 오는 날과 커피 향은 묘합니다. 왠지 모르게 나를 끌어당깁니다. 평소와 달리 유난히 커피 향이 좋습니다. 그 향이 향수를 불러오는지, 아니면 추억을 소환하는 마술의 힘이 있는지 모릅니다. 아무튼 신기하게도 후각을 자극해 감성에 젖게 합니다. 그게 싫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커피의 풍미를 더 깊게 해 주기 때문에 더 좋습니다.

한 잔의 커피가 마들렌 효과처럼 빛의 속도로 시간 여행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여행치 곤 설렘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혼자서 떠나는 여행치 곤 괜찮았습니다. 돈도 안 들고, 혼자만의 분위기여서 좋았습니다. 그윽한 커피 향에 젖어 커피 한 모금 마신 후 다시 창밖을 봅니다. 행복, 오늘 같은 날은 대단한 것 같지 않습니다. 이런 것도 행복이라 생각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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