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hoto 에세이/아포리즘

궁평항 갈매기

by 훈 작가 2024. 2. 12.

북한산 들개 문제를 다룬 TV 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녀석들은 우리에게 버림받은 유기견일 겁니다. 한때는 반려견으로 사랑을 받았을 녀석들이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졸지에 사회적 문제로 뉴스에 등장한 겁니다. 들개 무리는 야생에서 개체수를 늘리며 때론 사람까지 공격하는 모양입니다. 늑대의 후예로서 숨어있던 야생의 본능이 되살아나게 된 것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일 겁니다.
 
인간에 욕망에 의해 만들어진 동물원에 가 보면 동물의 왕국에서나 볼 수 있는 동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육사 손에 살고 있는 녀석들은 야생으로 돌아간다 해도 온전하게 살 수 없을 겁니다. 야생의 본능인 사냥하는 법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야생에서 생존하는데 필수적인 사냥하는 기술을 배우지 못했거나 배웠어도 잃어버려 할 수 없을 겁니다. 맹수라 하더라도 굶어 죽기 딱 좋은 상태로 전락한 겁니다.

어찌 보면 동물원의 동물은 인간에 의해 저질러지는 학대라는 생각까지 들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동물원에 갇힌 녀석들을 보며 웃고 즐기지만, 동물들에게는 교도소 같은 생활이나 다름없는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동물들은 사랑한다면 좁은 공간에 가두어 생활하도록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아습니다. 차라리 녀석들의 고향인 사바나 초원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게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역지사지 관점에서 접근해 보면 정답은 간단합니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은 무슨 재미로 하루하루 살까요. 동물원 생활은 녀석들에게 가장 중요한 자유를 우리가 빼앗은 거나 다름없는 생활입니다. 마음껏 뛸 수도 없고, 가고 싶은데도 갈 수 없습니다. 그냥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의 눈요깃감에 지나지 않습니다. 냉정하게 보면 분명 동물 학대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설 연휴를 맞이하여 바람도 쐴겸 궁평항에 왔습니다. 입춘이 지나서 그런지 한결 바람이 부드러워졌습니다. 바닷가로 길게 뻗은 부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고깃배도 모처럼 연휴를 즐기는 듯 한쪽에 닻을 내리고 쉬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한쪽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고, 갈매기들이 낮게 날며 “꺄약, 꺄약”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가까이 가 보니 사람마다 한 손에 새우깡을 들고 있었습니다.
 
갈매기들에게 새우깡을 주며 노는 광경입니다. 녀석들이 새우깡을 먹으려고 달려드는 게 사람들은 무척이나 재미있는 모양입니다. 사람들은 까르르 소리를 지르는가 하면, 함박웃음을 머금고 즐거워합니다. 갈매기들이 서로 새우깡을 먹겠다고 아우성치는 모습도 흥미로 보였습니다. 흔치 않은 풍경이다 보니 즐길만한 놀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도심에서 생각할 수 없는 장면이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게 사람에겐 즐거울지 몰라도 갈매기에게는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게 보면 갈매기를 죽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녀석들에게 지금 당장은 배고픔을 달래기에 도움이 될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게 나쁜 습관이 되어 녀석들은 사냥을 포기하게 될 겁니다. 쉽게 먹잇감을 구할 수 있는데, 녀석들이 굳이 어려운 사냥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없을겁니다.
 
사람들은 단지 재미로 던져 주는 새우깡이 즐거울 따름입니다. 갈매기를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주는 게 아닙니다. 거기에 녀석들이 길들여지고 있는 겁니다. 그러다 점점 사냥하는 법(물고기 잡는 법)을 잃어버리게 될 겁니다. 동물원의 동물처럼 길들여지다 보면 야성의 본능을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입니다. 갈매기들이 우리에게 길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Photo 에세이 > 아포리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민들레 홀씨  (174) 2024.04.30
지나간 자리  (157) 2024.02.17
내 안의 발전소  (162) 2024.01.22
역광사진도 멋있어  (85) 2023.12.09
단풍이 아름다운 이유  (8) 2023.11.1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