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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아포리즘

민들레 홀씨

by 훈 작가 2024. 4. 30.

어느 봄날, 눈 떠보니 내 모습이 구름으로 변했습니다. 구름이 될 운명은 아닌 것 같은데…. 갑자기 서글퍼집니다. 태어날 땐 꽃이었으니까요. 생을 마감할 때도 당연히 꽃일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홀연 바람과 함께 떠난 봄나들이, 저 구름과 함께 가면 여긴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겁니다.
 
착각이었습니다. 놀던 아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해맑은 미소를 띤 꼬마, 나를 두 손에 꼭 쥐고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호기심 어린 눈빛, 내가 사랑스러운지 입 맞추려 다가옵니다. 두 입술을 모으고 눈을 감았습니다. 부끄러워 눈까지 감았습니다. 순간 '후~욱' 소리와 함께 뜨거운 바람이 내 얼굴에 불어닥쳤습니다.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눈을 떠 보니 날아갑니다. 내 모습이 파란 하늘에 구름처럼 보였습니다. 구름과 나, 하늘에 누워 땅을 내려다봅니다. 구름이 내게 말했습니다.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거야?”
“바람이 날 여기까지 보낸 거야.”
“거짓말, 내가 여기서 다 봤거든.”
“….”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꽃이었을 땐 사랑만 주었던 녀석들이 나를 가지고 놀았던 겁니다. 그걸 사랑으로 생각했던 겁니다. 녀석들은 ‘잘 가, 안녕’이란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도 전혀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이별이 뭔지 모르는 모양입니다. 그러기에 미워할 수 없고, 버림받았다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람이라 했을 뿐이라고 대답했던 겁니다.
 
구름이 말했습니다. 홀로 된다는 건 외로운 일이고, 외로움은 마음을 어둡게 만들어 누구든 두렵게 느끼게 한다고. 그러니 생각을 바꾸라고 말했습니다. 넌 바람에 날아온 게 아니라, 어린 왕자가 되어 처녀비행에 나선 것이라 했습니다. 누구든 첫 비행은 혼자서 해야 하고, 두려움은 하나의 도전에 불과한 것이라 했습니다.
 
민들레 홀씨 꽃말은 이별입니다. 이별은 눈물을 머금고 있고, 아픔을 품고 있는 단어입니다. 홀씨가 되어 떠나야 하는 것은 삶의 운명이자 본질입니다. 아픔 없이 홀로 피는 꽃은 없습니다. 어떤 생명력이든 강합니다. 바람이 불어 홀씨가 날리는 것은 이별입니다. 그 이별이 생명력을 강하게 만듭니다. 이별의 아픔을 견뎌야 다시 꽃으로 핀다는 걸 걸 지금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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