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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아포리즘

한(恨)의 흔적일까?

by 훈 작가 2024. 5. 2.

남원 서도역 목조건물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 장소라고 해서 왔습니다. 70년대 시골 간이역을 보는 것 같습니다. 아날로그 감성이 느껴집니다. 열차가 다니지 않는 폐역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스산한 느낌마저 듭니다. 봄이지만 봄다운 분위기가 아직 스며들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조그만 목조건물이라 더 정감이 갔습니다. 시골 고향마을 초등학교 건물도 목조건물이었습니다. 건물 외벽에 검게 그을린 듯한 나무로 마감되어 있었습니다. 시선이 결 모양에 멈추었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어 보였습니다. 그냥 스치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중 하나가 상상력을 자극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데 뚫어지게 보았습니다. 보면 볼수록 기이한 형상입니다. 사진을 배우면서 생긴 일종의 버릇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좋게 말하면 사물에 대한 관찰이고, 나쁘게 생각하면 쓸데없는 시간 낭비입니다. 알 수 없는 느낌 때문에 한참 보다가 셔터를 눌렀습니다. 기묘한 형상 때문에 찍었습니다.

시선을 멈추게 한 단어는 관찰입니다. 볼수록 관찰의 시점을 지난 상상력이 시네마 천국으로 날아갑니다. 괴물 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뱀이 먹잇감을 향해 공격하는 모양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필이면 왜 이런 문양일까, 뭔가 한(恨) 같은 게 서려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건물은 1932년 일제 강점기 때 지은 겁니다. 감성으로만 다가가는 건 짧은 생각이라 들었습니다. 소설 ‘혼불’의 무대였기 때문입니다. 마치 소설 속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마저 듭니다. 그 시절을 살다 간 주인공들의 애환이 목조건물에 남아 풀지 못한 한(恨)이 이렇게 나타난 게 아닌가, 생각을 배 봅니다. 지나친 상상일 수도 있지만….
 
여행이란 단어를 떠올려 봅니다. 여행지에 가면 눈으로 보고, 인증사진을 남기면 그만인 경우가 많습니다. 좀 더 여유 있게 살펴보고, 사유하면서 곱씹어 보는 과정을 거치면 여행이 좀 더 달라질 수 있을 겁니다. 눈에서 시작하고 눈으로만 끝나는 여행은 사진밖에 남는 게 없을 겁니다. 늦었지만, 소설 ‘혼불’이라도 읽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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