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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아포리즘

먹구름

by 훈 작가 2024. 5. 1.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먹구름이란 말이 아름답게 쓰인 것은 ‘국화 옆에서’ 시(詩)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몇 번을 더 생각해 봐도 변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코흘리개 시절 먹구름을 이상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먹구름은 까만데, 왜 비나 눈은 까맣지 않은 거지? 이유를 알기 전까지 그랬습니다. 또 있습니다. ‘천둥이 먹구름 속에서 울었나 보다’라고 했을 때, 정말 울었을까, 이게 무슨 뜻이지, 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배웠기 때문에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먹구름을 제일 싫어했던 때는 초등학교 시절이었습니다. 초여름 날, 또래 친구들과 노을 구경을 하는데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왔습니다. 별구경까지 하고 가려했는데, 별 볼 일 없게 만든 겁니다. 그래도 겨울에 눈 올 때만은 싫지 않았습니다. 어쨌거나 먹구름은 어린 시절 내 마음을 까맣게 덮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먹구름이란 말은 지금도 좋은 느낌으로 쓰이지 않습니다. 먹구름이란 말 자체가 태생적으로 그런가 봅니다. 조간신문을 펼쳐보면 먹구름이란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하나같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입니다. 정치면이든 경제면이든 기사 내용에 먹구름이란 말만 들어가면 상황이 안 좋다는 걸 누구나 알 겁니다. 

먹구름은 일상 대화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이런 말을 하거나, 들어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왜 얼굴에 잔뜩 먹구름이 껴 있어?” 굳이 말 안 해도 어떤 상황인지 알고도 남을 겁니다. 이렇듯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된 지금까지 먹구름과의 만남은 좋지 않았습니다. 

일출 사진을 찍으러 나왔습니다. 그런데 오늘도 만났습니다. 전날 일기예보와 완전 딴판입니다. 힘이 쭈욱 빠집니다. 카메라만 만지작거렸습니다. 사실, 출사현장에서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냥 가기 뭐해서 녀석(먹구름)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속으로 한마디 해주고 싶었습니다.

“야! 넌 낄끼빠빠도 모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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