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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자전거 타기

by 훈 작가 2024. 2. 20.

수없이 넘어졌습니다. 그때처럼 많이 넘어졌던 적이 없습니다. 어린 시절 자전거 배울 때 이야기입니다. 감당하기도 버거운 어른 자전거(그땐 어린이용 자전거가 없었음) 끌고 학교 운동장에 갔습니다. 처음엔 자전거 프레임(뼈대) 사이로 발을 넣고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익숙해지면 자전거 안장으로 올라가 타는 걸 연습했습니다.

하지만, 다리가 짧아서 페달이 닿지 않아 힘들었습니다. 결국 붙잡고 있던 핸들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중심을 잃고 ‘꽝’하고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넘어지고 또 넘어져 무릎이 깨지고 피가 났습니다. 아기가 두 발로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다해 일어섰다가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연습을 수없이 했던 것처럼 그렇게 자전거 타기를 배웠습니다.

사실, 자전거 타는 법은 책에 나오지 않습니다.  딱히 어떻게 타야 하는지 정해진 정답도 없습니다. 몸으로 터득해 스스로 익히는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은 어린이들이 타는 자전거는 뒷바퀴에 보조 바퀴가 붙어 있어 넘어질 염려가 없지만, 그때는 없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어느 정도 배우면 보조 바퀴를 분리하고 타면 됩니다. 

인간은 몸으로 배운 것은 절대 잊지 않습니다. 몸이 이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실에서 배운 수학 공식이나 영어 단어 같은 단편적인 지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릴 적 배운 자전거는 평생 갑니다. 여태껏 잃어버린 사람을 주변에서 보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본능적인 운동신경이 그렇게 만들어져 있나 봅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걱정되어 뒤에서 붙잡아주는 부모들을 가끔 보게 됩니다. 자식들을 얼마나 애지중지 금쪽이처럼 키우는지 모르겠습니다. 옛날과 달리 요즘 부모들의 자식 사랑은 유별난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자식 사랑에 대해 뭐라 할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사랑이 너무 넘쳐 아이들을 약하게 키우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인생이란 자전거는 어차피 혼자 타야 합니다. 어린 아기가 두 발로 일어서는 것도 부모가 대신해 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교육의 목적은 스스로 자립하여 살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야 험한 세상을 혼자서 헤쳐나가며 살 수 있습니다. 어차피 부모가 아이의 인생을 대신해 살 수는 없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인생이 자전거 타기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균형을 유지하려면 계속 페달을 밟아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도록 페달을 밟고 핸들을 잡고 어디로 갈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오롯이 안장에 앉아 있는 자식의 몫입니다. 이 모든 걸 혼자서 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뒤에서 붙잡아 주지 말고 지켜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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