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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뽀뽀해! 뽀뽀해!”

by 훈 작가 2024. 2. 14.

“뽀뽀해! 뽀뽀해!”

사진 애호가들이 언덕에 있는 연인을 향해 소리를 질렀습니다. 두 연인이 머뭇거리며 망설였습니다. 사진 애호가 한 사람이 연인에게 갔습니다. 그가 카메라 LCD 액정화면을 보여주며 가서 다시 말했습니다. 역광사진이라 실루엣처럼 이미지가 나와 누구인지 알 수 없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며 그들을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이메일만 알려주면 멋지게 나온 사진을 보내 준다는 말까지 하며 부탁했습니다. 

사진은 노을이 짙게 물들어 가는 어느 날 늦은 오후, 해넘이 풍경 출사명소로 알려진 청주 정북 토성 풍경입니다.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날 연습 삼아 일몰이나 찍어 볼까, 하고 출사지에 갔는데 우연히 사진 애호가들 틈에 끼여 이 사진을 담게 되었습니다. 운이 좋았던 겁니다. 흔히 사진은 발품이란 말이 있는데 이에 딱 맞는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2월 14일, 밸런타인 데이입니다. 연인들에게는 설레고 기다렸던 날일 겁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이란 말은 뜨거운 단어입니다. 누구나 사랑에 빠지면 자나 깨나 연인 얼굴이 떠나지 않을 겁니다. 사랑이란 마법에 걸리면 어쩔 수 없습니다. 아마 어젯밤 설레는 연인에게 줄 초콜릿을 사며 밤잠을 설친 사람도 적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젊은 날 낭만적 사랑을 할 때는 뇌에서 호르몬이 분비되어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라 그렇다는 겁니다. 

세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연인들의 애정 표현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거침없습니다. 누가 보든 말든 타인의 시선을 서슴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에스컬레이터 안에서 포옹하고 입 맞추는가 하면, 공항이나 버스터미널에서 헤어지며 낯 뜨거운 애정 행각을 벌이기도 합니다. 지하철에서도 서로 몸을 밀착한 채 입 맞추는 장면도 흔합니다. 언제부터인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벌이는 젊은 연인들의 애정 행각이 일부이긴 하지만  당당해졌습니다.


예전 같으면 어른들이 "여기가 너희들 안방이야, 남사스럽게 무슨 짓이야." 하고 한 소리 하셨을 법도 합니다. 여기에 요즘 애들은 너무 버르장머리가 없다며 혀를 차며 옆에서 거드는 어른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예 못 본 척 눈을 돌립니다. 까딱 잘못하면 개 창피당하게 될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며 대들지도 모릅니다. “아저씨가 뭔데 상관이야.” 그 순간 말문이 막히게 됩니다. 

세상이 변한 건 사실입니다. 사랑에 대한 표현 또한 많이 달라졌습니다. 애정 표현이 꼭 이래야만 한다는 법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행동양식에 스며들어 있는 유교적 가치관이 아직은 현실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여기에 서구 문명이 들어와 충돌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이런 변화의 흐름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또한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지만, 기성세대에게 불편하게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사진 속의 연인을 생각하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을 지는 언덕에 연인이 뽀뽀하는 장면을 찍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순수하게 사진 애호가들의 의도대로 연출해 주었습니다. 때론 거침없는 애정 행각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보면서 “뽀뽀해! 뽀뽀해!” 큰 소리로 외치는 어른들이 이때만큼은 너무 이기적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떨결에 사진을 찍긴 했지만 솔직한 마음입니다.

연인들의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더욱이 입맞춤 장면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밸런타인데이는 오래전부터 연인들의 날로 자리매김해 왔습니다. 사진 속의 두 주인공도 오늘은 어디선가 초콜릿같이 달콤한 밀어를 나누며 아름다운 사랑을 키워가리라 생각합니다. 사진을 찍던 날 “뽀뽀해!, 뽀뽀해!” 소리를 들으며 연출했던 입맞춤 말고 오늘은 진실한 사랑을 담은 멋진 키스라도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가급적 분위기 있는 둘만의 장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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