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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터키

낯선 행성 여행 '카파도키아'

by 훈 작가 2024. 2. 23.

 

열기구 투어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아마도 내 생애 이런 황홀한 경험이 또 있을까 싶다. 환상 속에 머물다 온 것 같은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다시 카파도키아 일정이 시작되었다. 카파도키아 일정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패키지여행 특성상 일정이 빠듯하다. 어쩔 수 없이 휴가 일정에 맞추어 여행을 다녀야 하니 어찌하겠는가. 

아침 식사 후 지하도시라 불리는 <데린쿠유>로 이동했다. 지하도시라 하니 매우 궁금했다. 하지만 이곳은 일종의 피난처다. 기독교인들의 종교적 박해를 피하려고 터키인들이 만든 곳으로 지하 38m까지 토굴로 만든 생활공간이다. 이미 <데린쿠유> 입구에는 긴 행렬이 늘어서 있다. 한 줄씩 차례로 들어갔다. 폭이 상당히 좁다. 한 줄씩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굴이다. 좁은 통로라 올라오는 사람이 지나가야 다시 내려간다. 수평 각도가 아니라 경사진 굴이다.

데린쿠유 :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조금 들어가니 지하도시란 표현을 왜 사용했는지 이해가 된다. 다양한 용도의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게다가 수용인원이 25,000명이라고 한다. 입이 딱 벌어질 정도다.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심지어 가축을 기르는 외양간 같은 곳도 있다. 환기구도 만들어 놓았다. 와! 실로 놀랍다. 통로 중간에 외부 침입을 차단할 수 있도록 맷돌 모양의 돌로 만들어 놓았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이러한 토굴이 여기만 아니라 카파도키아 곳곳에 만들었다고 한다. 가이드의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지하도시를 건설하면서 나올 수밖에 없는 엄청난 양의 토사가 있어야 하는데 <카파도키아> 어느 곳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통로는 아주 미로 같아서 길을 잘못 들어서면 찾을 수도 없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개인행동이 절대 금물이다. 자칫하다 일행과 떨어지면 길을 잃고 미아가 되는 신세가 된다. 토굴은 흙이 아니라 암석이라더니 정말 맞다. <카파도키아>의 자연환경에서 지상은 어느 곳도 숨을 만한 곳이 없다. 궁금하기 짝이 없다. 지하도시 <데린쿠유> 설계는 어떻게? 사용한 도구는? 지하공간이 서로 겹치지 않게 어떻게 만들었을까? 설명이 쉽지 않다. 역사는 과학이 아니다. 과학적 증명을 넘어서는 것은 미스터리다. 바로 이곳이 그렇다. <데린쿠유>는 불가사의 그 자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데린쿠유 :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역사적 관점에서 생각해 봤다. 지리적으로 터키반도는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있다. 다시 말해 이슬람 문화와 기독교 문화가 충돌하는 지리적, 문화적 충돌지역이다. 로마 시대의 동방정책이 진출하면서 터키와 충돌했다. 종교적 박해에 시달리는 상황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지하도시 <데린쿠유>는 그 산물이다. 종교적 충돌이 터키 땅에는 박해와 고통을 가져온 것이다. 침탈의 공포는 다름 아닌 종교다. 기독교가 박해의 바로 주범이다. 새삼스럽게 종교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서로가 인정하고 공존하는 종교의 진리를 신이 외면한 것인가? 다양한 가치가 인정되어야만 사람 사는 세상인데, 내 것은 옳고 너의 것은 옳지 않다. 나는 정의이고 너는 악인가? 그러한 주장은 독선이지 종교가 지향하는 가치나 이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종교가 지향하는 유토피아적인 세계는 어떤 곳인가? 진정한 종교가 추구하는 길과 덕목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종교가 아닐까?” 그런 세상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어야 한다. 종교는 더 이상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그들만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점심시간이다. 식사는 특식메뉴다. “특(特)”자가 들어가면 기대된다. 터키 특유의 음식인 항아리 케밥이 나온다. 말장난으로 발음하면 개밥처럼 들릴지 모른다. 실망이 가득한 아침 식사였기에 궁금증으로 잠시 허기진 배를 달랜다. 터키 식사는 항상 먼저 수프가 나오고 주메뉴가 등장했다. 수프가 나왔다. 배고픔을 재촉하는 식도로 야채수프를 내려보냈다. 배속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항아리 케밥은 항아리 같은 단지에 소고기, 양고기, 닭고기와 양념, 채소를 버무려 넣고 뚜껑을 덮은 후 밀가루 반죽으로 밀폐시키고 끓인다. 조리된 항아리단지를 테이블로 가져온 후 뚜껑을 열고 적당히 그릇에 덜어낸다. 그릇은 밥공기보다 크다.

식사 후 본격적인 지상 투어 시작되었다. 오후 일정으로 맨 먼저 들른 곳은 괴레메 계곡이다. 파란 하늘 아래 뾰족한 암석이 마치 대나무밭 죽순이 올라온 것 같다. 첨탑 모양의 바위들이 죽순처럼 하늘을 향해 솟구쳐 있다. 신비로운 광경이다. 영화 속의 스타워즈에 배경이 되었던 곳도 카파도키아라고 한다. 이뿐 아니다. 만화영화의 “스머프” 공간이란 생각도 든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겠지만 “스머프”의 작가도 이곳에서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가이드는 마음을 읽는다. 카메라에 신비로움을 채울 시간을 줬다. 행복의 정점을 찍는 시간이다. 카파도키아가 투어의 하이라이트이자 터키 여행의 화룡점정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차창 밖으로 눈을 돌리기가 무섭게 다시 버스가 멈춘다. 우리가 내린 곳은 우치히사르 계곡이다. 광활한 계곡에 늘어서 있는 첨탑 바위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신비감을 발산했다. 일행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기기묘묘한 암석이 별들의 전쟁(Star Wars) 무대 같은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조금 전 보고 온 괴레메 계곡의 바위 모양과는 또 다른 경이로움이다. 오히려 여기가 더 신비감은 한 수 위다. 볼 때마다 마음이 흔들렸다. 본래 사람은 그런 존재가? 장소가 바뀔 때마다 더 멋지게 보이니 말이다. 나도 내 마음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터키는 신비의 나라다.

이미 신비로움에 취해버린 늪에서 또 다른 신비의 수렁으로 가이드는 계속해서 사정없이 밀어 넣는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파 사이코패스 계곡이다. 여기도 기기묘묘한 버섯모양의 바위가 거대하게 서 있다. 마음이 급했다. 여기도 가보고 싶고 저기도 가보고 싶다. 몸은 하나인데 이를 어쩌나 싶다. 지나가는 여자 관광객끼리 버섯바위를 보면서 무심코 하는 작은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얘, 남자들 거시기 같이 생기지 않았니?

두 여인의 말을 듣고 보니 보는 관점에 따라 그렇게도 보이는 것 같다. 참으로 기기묘묘한 바위 형상이다. 

 

햇볕이 따갑다. 카파도키아의 매력을 가늠할 수 없다. 가는 곳마다 경관이 신비하다. 이것이 환상인가 눈이 멀게 된다. 취하면 깨어나기 싫다. 술이 아니다. 유혹도 아니다. 카파도키아는 신비한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되는 착각에 빠지게 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내가 급하다고 했다. 화장실에 가야 하는 모양이다. 수업료로 50센트를 준비했다. 근처에 있는 기념품 가게는 음료도 판다. 그곳을 이용했다. 음료 한잔을 마시며 잠시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앉아 기다렸다. 주변 풍경을 카메라에 몇 장 담고 나서 학교 수업을 마친 아내가 돌아왔다. 그리 걱정할 정도는 아닌 듯했다. 

 

여행에 있어서 컨디션 유지는 매우 중요하다. 여행 중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이미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다. 편안한 마음과 몸이어야만 한결 여행길이 즐겁다. 우선 육체적으로 편안하면 마음도 그만큼 마음도 여유가 있다. 그 마음에 추억을 담아야 한다. 그래서 컨디션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추억을 담았다. 그렇게 카파도키아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가득 담았다. 행복은 추억 속에 담아 또 다른 행복을 만든다. 이것이 여행이다. 여행은 사랑하는 사람과 동행하면서 행복을 만드는 과정이다.

 

카파도키아 마지막 일정이 끝났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그런데 아쉬움이 남는다. 정든 사람과의 헤어짐은 곧 슬픔이다. 그런 것도 아닌데 아쉽다. 다시는 올 수 없을 것 같은 생각 때문이다. 오늘은 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렇다. 매 순간이 마지막이다. 그러나 오늘은 기억하고 싶은 마지막이다. 잊고 싶지 않은 마지막이다. 그런 서글픔이 마음을 저민다. 여행이 가져다주는 슬픔이다. 내 나이가 청춘도 아닌데 이게 웬일인가. 가슴이 뜨거워진다.

가이드가 우리 일행에게 마지막 서비스를 제공했다. 카파도키아를 빠져나가는 모퉁이에서 예고 없이 차를 세웠다. 낙타 바위 근처다. 마지막 아쉬움을 여기서 마무리하라는 것이다. 그가 짧은 석별의 시간을 주었다. 그것도 감사하다. 해야 할 일은 마지막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 일이다. 민첩한 동작으로 셔터를 누른다. 그 짧은 순간에 신랑·신부의 웨딩 촬영 모습까지 담았다. 아름다운 허니 문의 추억을 카파도키아에서 담는 그들에게 행복을 기원하면서 맨 마지막에 내가 버스에 오르고서야 카이세리 공항으로 출발했다.

 

카이세리까지는 65km로 한 시간을 가야 한다. 이별의 눈물도 없이 떠났다. 떠나는 마음은 아프다. 뜨거운 눈물이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인다. 버스 안은 침묵이 흘렀다. 나는 눈을 감는다. 뜨거움이 가슴 깊이 올라왔다. 아직도 마음은 순수감성인가 보다. 뜨거운 안녕은 사랑의 감정이다. 사랑이 아닌 이별의 감정은 눈물은 없다. 그런데 뜨거운 눈물이 가슴에 흐른다. 카파도키아의 품에서 떠나는 아픔이다.

카이세리 공항을 한가하고 조그만 지방 공항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이 빗나갔다. 많은 승객으로 혼잡했다. 1차 검색대를 통과하고 탑승수속 절차를 기다렸다. 터키항공 19시 20분 비행기다. 이스탄불까지 예정 비행시간은 1시간 20분이다. 피곤한 몸을 비행기 좌석에 맡겼다. 부드럽게 활주로를 벗어나 이륙한다. 어둠이 밤하늘을 덮기 시작했다. 비행기 날개 끝에 반딧불처럼 붙어있는 불빛이 기내 창을 통해 들어온다. 밤하늘은 헤엄쳐 우리는 이스탄불로 간다. 

기내 창으로 다이아몬드를 뿌려 놓은 듯한 이스탄불의 야경이 들어왔다. 비행기가 어둠 속으로 가라앉듯이 내려가더니 굉음을 내뿜으며 미끄러진다. 이스탄불 공항에 착륙한 것이다. 그 시각이 오후 21시 00분이다. 공항을 빠져나왔다. 바쁜 걸음으로 고속도로에 진입한 버스가 질주했다. 이스탄불도 교통체증으로 만만치 않다고 한다. 다행히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러시아워를 벗어난 시간이다. 숙소까지도 거의 1시간 이상을 달렸다. 밀려오는 졸음이 눈앞을 가렸다.

호텔이다. 객실에 들어가 창문을 열어본다. 어둠 속에 가끔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량의 불빛만 보였다. 시원한 바람이 방으로 들어왔다. 이스탄불의 밤이 깊어 간다. 여행의 피곤함 속에도 별빛만 초롱초롱한 밤이다. 짐 보따리를 풀고 달콤한 밤을 준비했다. 내일부터 2일간 이스탄불 일정이다. 내일은 오전 9시 30분 투어가 시작된다. 조금은 여유롭다. 이스탄불의 태양이 우리를 기다린다. 터키 일정의 마무리는 이스탄불이다. 터키 최대의 도시이자 역사와 유적의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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