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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터키

성 소피아 성당

by 훈 작가 2024. 3. 5.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돌마바흐체 궁전 관람을 마치고 나온 우리는 트램을 타고 그랜드 바자르로 이동했다. 이스탄불 유럽 쪽 구시가지에 있는데, 가이드는 우리에게  8번째 정류장에서 내리라고 말했다. 서울의 지하철처럼 사람이 많았다.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들을 보면 왠지 아라비안나이트에 등장하는 도적들 같은 느낌이 든다. 눈이 마주칠 것 같아 얼른 시선을 돌렸다. 터키 남자들은 면도를 싫어하는 모양이다. 

트램에서 내렸다. 가이드가 다 내렸는지 인원을 확인한 후 앞장섰다. 그를 따라 조금 걸어 그랜드 바자르 1번 게이트에 도착했다. 입구가 성문처럼 보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의 남대문시장이나 동대문 시장이 아닌가 싶다. 규모가 크고 통로가 여러 군데 있어서 길을 잃어버릴 수 있으니 게이트 번호를 잘 기억하라 하면서 소매치기도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물건가격도 비싸게 부르니 무조건 반으로 흥정하라는 팁도 잊지 않았다. 


그랜드 바자르는 15세기 건립돼 동서양의 교역 장소로 이스탄불의 전통 시장이다. 또한 여행객이 빠뜨리지 않고 찾는 대표적인 명소다. 이스탄불의 구시가지 중심에 자리 잡고 있으며 1461년 개장한 현존하는 가장 크고 오래된 실내 시장이다. '바자르'는 중동이나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시장’을 뜻한다. 규모도 엄청나다. 미로처럼 복잡하게 교차한 골목에 늘어선 상점이 4,500개나 된다. 성문처럼 생긴 입구가 21군데나 있다.

아내와 난 1번 게이트 입구에서 통로 끝까지 갔다 돌아오기로 했다. 여기저기서 호객하는 상인들 우리를 향해 부른다. 터키를 상징하는 기념품을 몇 개라도 사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화려한 색상의 기념품들이 즐비해 혼란스럽다. 그러다 한 상점으로 들어갔다. 적당한 가격에 흥정하며 깎아 달라고 하니 단칼에 거절한다. 상술이 장난이 아니다. 쇼핑은 에누리하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가게 주인은 보기보다 빡빡하다. 완전 배짱이다.


이내 포기하고 발길을 돌리는 순간 주인은 그 가격에 사라고 우리를 붙잡는다. 누굴 약 올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상한 나머지 그냥 나와 버렸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니 주어진 자유 시간이 거의 다 된 것 같다. 온종일 걷는 시간이 많다 보니 아내가 피곤한 기색이다. 계속되는 더위에 체력이 마음에 걸렸다. 하는 수 없이 조금 일찍 약속 장소로 갔다.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다 옆쪽 계단에 주저앉았다. 해외여행은 늘 피곤하다. 날씨도 한 몫한다.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 일행만 아니다. 이곳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이 여기저기 보였다. 다른 여행사에서 여행객들이다. 귀에 익은 한국말이 정겹게 들렸다. 구경을 마친 우리 일행이 다 모였다. 가이드가 자신을 따라오라며 앞장선다. 그랜드 바자르에서 성 소피아 성당까지 도보로 이동할 거란다. 앞사람의 뒷모습을 놓치지 않고 따라갔다. 시민들로 북적이는 인도를 따라 15~20분을 걸은 것 같다.


성 소피아 성당이 보였다. 이 성당은 비잔틴제국(동로마)의 양식과 오스만제국의 이슬람양식이 섞인 비잔틴 건축의 걸작으로 꼽힌다.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는 세계 최대 규모였다. 이스탄불이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불리고 있을 때(325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리스도교의 대성당으로 지었다. 이후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에 의해 532부터 537년에 걸쳐 비잔틴 양식의 대성당을 완공했다. 이 성당은 오스만 터키제국에 의해 비잔틴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그리스 정교회의 총본산이었다. 

내부로 들어가니, 분위기를 압도하는 높은 천장과 현란한 문양의 모자이크 장식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또한 초기 그리스도교의 성화(聖畵)와 이슬람의 상징물들이 내부를 장식하고 있다.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길이 81m, 폭 70m로 기둥도 없이 지름 33m의 거대한 돔 지붕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935년 이후부터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내부의 대형 돔 지붕 4곳에는 천사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얼굴이 모두 훼손되어 있어 안타까웠다.


2층에서 내려다본 성당 내부의 중앙 홀은 생각보다 넓게 보였다. 건축을 잘 모르지만, 지금의 건축 기술로도 기둥이 없이 이런 공간을 짓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1,500년 전에 이런 건축물을 지었다니 정말 놀랍기만 하다. 가이드 설명에 따르면 성소피아 성당은 안테미우스와 이시도로스 두 명의 그리스 건축가가 설계했으며, 성당을 종교 건축물과 왕궁을 조화시킨 독특한 형태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 성당을 모스크로, 모스크에서 다시 박물관이 되면서 이슬람과 기독교, 두 종교 간 평화를 추구했던 성 소피아 성당이 모스크가 되자 곳곳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종교 간의 갈등이 고조된 것이다. 특히 터키 정부의 의도가 정치적 우파를 결집하려는 하는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고 한다. 언론과 이스탄불 시민의 여론은 역사적 유물을 정치적으로 악용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돔을 올려다보니 목이 아프다. 화려한 내부 장식의 성 소피아는 바로 앞쪽에 있는 블루모스크보다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약 1,000년 뒤에 지어졌음에도 블루모스크보다 미학적 가치가 더 있다고 평가받는다. 성당 건물 주변 있는 탑들은 15세기와 16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모스크 성전의 특징인 탑(minaret)이다. 이것은 예배 시간 공지를 할 때 사용한단다.

유럽 쪽을 여행하다 보면 성당 투어가 많다. 역사적, 종교적 문화유산이니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놀라운 건 보존이 잘 되어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배우고 본받아야 할 부분이 있다. 있는 우리의 문화유산이나 제대로 보존하고 유지해야 할 텐데, 관계 당국은 늘 인력 부족이나 예산 타령만 하는 것 같다. 세상에 핑계 없는 무덤은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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