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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터키

목화의 성(城)이라 불리는 ‘파묵칼레’

by 훈 작가 2024. 5. 22.

넓은 광야를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다. ‘쉬린제’ 마을에서 ‘파묵칼레’까지 남서쪽으로 2시간 30분을 달려야 한다. 점심 식사 후라서 그런지 눈꺼풀이 무겁다. 아무리 참으려 해도 끈질기게 눈꺼풀을 끌어내린다. 말 그대로 비몽사몽 상태다. 그런 와중에도 차창 밖 풍경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광활하게 펼쳐진 이국의 풍경이 신비롭다. 적막감 가득한 초원의 풍경도 아니다. 숲이라고 생각되는 풍경은 전혀 안 보인다. 그렇다고 끝없는 지평선도 아니다. 지평선과 구릉지가 적당하게 섞인 풍경이 줄곧 이어졌다. 그 순간 저 멀리 하얗게 보이는 언덕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기가 ‘목화성’이라 불리는 ‘파묵칼레’인가, 짐작했다.
 

조금 더 가까워지니 시야에 들어왔다. 맞는 것 같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보았던 신비감이 보이지 않았다. 상상했던 풍경이 아닌 것 같아 실망스러웠다. 너무 기대가 컸나 싶다. 버스에서 내리니 다소 햇살이 따갑게 느껴진다. 주차장엔 다른 관광버스도 많이 보였다. 우리는 현지 가이드를 따라 줄지어 따라갔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 경이로운 풍경이 일순간에 내 눈을 크게 뜨게 만들었다. 반전이다. 버스에서 본 풍경은 쓸데없는 기우(杞憂)였다. 멀리서 본 ‘파묵칼레’ 풍경은 아래에서 위로 볼 수밖에 없으니 그 실체를 가늠할 수 없었을 뿐이다. 그저 단순히 하얗게 보였던 언덕배기였다. 그래서 기대를 저버리는가 싶었던 것이다.
 

“우와! “
 
모두 감탄사를 연발했다.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이 동시에 교차하면서 시선을 황홀하게 했다. 눈으로 보는 순간 말이 필요 없었다. 마치 다랭이논 같기도 하고, 선녀가 벗어 하얀 옷자락을 펼쳐 놓은 모습같기도 하다. 신비감을 자아낸 이색적인 풍경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보는 눈은 비슷하다. 우리가 합창하듯 감탄사를 동시에 연발한 걸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파묵칼레’는 터키 남부 데니즐리주에 있다. 이곳은 석회 성분이 다량으로 함유된 온천수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바위 위로 흐르면서 표면을 탄산칼슘 결정체로 뒤덮어 마치 목화로 만든 성(城)처럼 만들어진 곳이다. 한 마디로 자연이 만들어 낸 신비의 결정체다. 신비로움이란 표현은 자연이 아니고서는 범접할 수 없는 수식어가 아닌가 싶다.
 

하늘빛을 고스란히 담은 물빛이 더할 나위 없는 신비감을 연출한다. 그 물이 녹아 흐르는 것처럼 온천수가 계단 형태를 이루고 있는 언덕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린다. 탄산칼슘이 녹아 만들어진 크고 작은 연못과 웅덩이가 마치 빙하수와 우유가 섞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흐르는 물을 보면 투명하다.
 
35℃ 온천수가 계단식 웅덩이를 채우고 그 웅덩이에 몸을 담그고 있는 관광객들은 한가로운 오후를 즐긴다. 이상한 관점에서 보면 동네 목욕탕 같은 풍경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주위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우리 가족도 잠시 신발과 양말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따뜻하다. 바닥은 생각만큼 미끄럽지 않다. 천연 노천탕 같은 생각이 든다. 발만 담그고 있어도 피로감이 풀리는 느낌이다. 한 여름철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탁족(濯足)의 시원함과 전혀 다르다. 여행에서 즐기는 색다른 체험이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전신을 물에 담근 사람,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는 사람, 비키니 차림의 아가씨, 어린아이와 같이 온 가족들 다양한 모습이다.
 
그곳을 나와 벗었던 양말과 신발을 신었다. 2쌍의 예비 신랑 신부가 눈에 띄었다. 웨딩사진 촬영 장소로도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햇빛을 피해 그늘로 왔다. 갈증이 나는지 아내가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자고 했다. 아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아내와 난 콜라를 마셨다. 짜릿한 전율이 시원하게 가슴을 적신다.

파묵칼레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좀 더 아름다운 문화유산으로 오래 보존하여 후대에 물려주려면 유적 보호차원에서 관람은 허용하되 출입을 통제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아무래도 사람의 출입이 자유롭게 허용하다 보면 오염으로 인한 자연 파괴가 우려된다.
 
‘파묵칼레’ 바로 옆에 ‘히에라폴리스’ 유적지가 있다. 로마 시대 황제들이 피로와 휴식을 위해 바로 이곳을 찾았던 곳이다.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어 아쉬웠다. 짐작하건대 자연경관보다 유적지로서의 가치 보존을 소홀히 하지 않았나 싶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잘 보존했으면 하는 아쉬운 대목이다.

터키 여행의 1막 무대가 막을 내렸다. 우린 객석에서 일어나  버스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좌석에 앉으니 시차에 따른 피로가 순식간에 밀려온다. 오늘 밤은 꿀맛같은 잠에 빠져들게 분명하다. 내일 또 이어지는 2막의 무대는 어떤 설렘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까.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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