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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저녁이 있는 삶의 풍경

by 훈 작가 2024. 2. 26.

퇴근 시간이 다 됐는데 조용하기만 했습니다. 업무를 정리하고 일어나 사무실을 나가는 직원이 안 보였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윗사람 눈치만 보며 뭔가 업무를 하는 척하고 있었습니다. 부장님이 퇴근해야 차례로 퇴근할 수 있었던 시절의 풍경이 그랬습니다. 칼퇴근한다는 건 강심장 아니고는 감당하기 어려운 단어였습니다. 어쩌면 출근은 있는데 퇴근은 없는 것 같은 직장생활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당시는 모두 비슷했을 겁니다.  

한때 유행했던 ‘워라벨’이란 말이 생각났습니다. 시대변화를 실감 나게 만든 말입니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일만 하며 즐겁고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 수 없는 시대입니다. 디지털 문명이 가져온 문화의 발달로 세상은 열심히 일하고, 여가 시간을 통해 자신만의 문화생활을 즐기면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변화의 흐름은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어느 여름날, 일몰 풍경이나 사진에 담아 볼까,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평일이니 당연히 출사지에 사람이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빗나갔습니다. 주차장에 차들도 많았고 반려견을 데리고 온 사람도 있었고,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도 제법 많았습니다. 하루를 마감하는 평범한 일상에 지나지 않는데 정겨워 보였습니다. 여유로운 삶의 모습을 보면서 저런 게 행복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사진을 취미로 하면서 때론 나도 모르게 행복한 감정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여명과 함께 시작되는 일출을 찍을 때입니다. 연극 무대 위에 선 배우의 독백처럼 나 홀로 감탄사를 연발하며 가슴 벅찬 감정에 빠질 때가 많았습니다. 반면에 일몰 사진은 그런 감정에 젖기 힘듭니다. 출사지에 사람이 많은 것도 그렇고, 일출과 달리 일출 전 새벽시간에만이 느낄 수 있는 고즈넉한 분위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몰 사진을 찍으러 출사지에 가면 풍경 속에 사람이 있어 아름답습니다. 사진 속의 주인공이 사람일 때 더 정감이 가고, 주제도 더 선명해집니다. 자연 풍경은 눈으로만 느끼게 하지만, 사람이 주제가 되는 사진은 그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단순한 이미지라도 사진을 찍는 관점에서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어떻게 표현해야 삶의 아름다운 장면을 담을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사진 속의 주인공은 젊은 부부가 아이를 안고 걷는 장면입니다. 그냥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노을 지는 배경이라 느낌이 다르게 옵니다. 노을 지는 저녁 시간에 노을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지극히 평범함에도 우리 모두 그런 삶을 누리며 사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삶이었으면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출근은 있지만 퇴근 대신 야근이 많은 직장생활을 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나보다 회사(조직)를 우선시했고, ‘칼퇴근’이란 말은 사전에 없었던 시대를 살았습니다. 한마디로 ‘저녁이 있는 삶’을 지향하는 MZ세대와 거리가 먼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오후 6시, ‘땡’ 하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젊은 직장인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그들이 기성세대보다 ‘저녁이 있는 삶’을 사는 건 확실해 보입니다. 받아드리기 힘든 부분이 있지만, 한편으론 그 당당함이 부럽습니다.  그런 직장생활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다행인 건 지금은 마음껏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긴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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