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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연날리기

by 훈 작가 2024. 2. 27.

/동네 꼬마 녀석들 추운 줄도 모르고 언덕 위에 모여서/
/할아버지께서 만들어 주신 연을 날리고 있네./
/꼬리를 흔들며 하늘을 나는 예쁜 꼬마 연들이/
/나의 마음속에 조용히 내려앉아 세상 소식 전해 준다./

1979년 제2회 ‘젊은이의 가요제’(TBC 동양 방송에서 주최)에서 그룹 라이너스가 불러 우수상을 받은 ‘연’이란 노래의 도입 부분 가사입니다. 민영방송이었던 TBC 동양 방송은 1980년 신군부 군사독재 권력에 의해 언론통폐합이란 명분으로 KBS2-TV로 흡수되어 사라졌지만, 암울했던 그 시대의 추억을 담은 이 노래는 젊은이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봄 방학입니다. 그런데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 아이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재잘거리며 재미있게 노는 개구쟁이들이 보여야 할 것 같은데 그게 착각이었나 봅니다. 단지 규모가 작은 아파트도 아닌데 아이들이 다 어디에서 노는지 모르겠습니다. 온종일 방구석 컴퓨터 앞에서 게임을 하는 건지, 아니면 스마트 폰이나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옛날에는 요즘과 달리 봄 방학을 하면 집에서 노는 경우가 많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놀면 시끄럽다고 엄마들이 야단치며 나가 놀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동네 공터나 마을회관 같은 넓은 마당에 모여 구슬치기, 딱지치기, 자치기, 오징어 게임, 팽이치기 제기차기 같은 걸 하며 놀았습니다. 설 명절부터 정월 대보름날 전후로 연을 만들어 날리기도 했습니다. 그즈음이면 제법 봄바람이 불어 연날리기가 제격이었습니다.


전통문화인 세시풍속이 아직은 남아 있긴 합니다. 그러나 기성세대들이 어릴 적 즐겨하던 놀이는 점점 사라져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게 동네 PC방 아니면 스마트 폰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요즘은 초등학교 아이들 대부분이 스마트 폰을 갖고 다닙니다. 아이들은 틈만 나면 스마트 폰을 꺼내 들고 보며 웃거나 빠른 손놀림으로 게임을 하며 노는 것 같습니다. 

2020년 정월 대보름날이었습니다. 세시풍속인 달집 태우기 하는 걸 담으려고 카메라를 챙겼습니다. 정월대보름 행사장에 도착했는데 분위기가 썰렁했습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코로나 여파로 행사가 취소되었다는 겁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나 봅니다. 하는 수 없었습니다. 승용차로 돌아가 보름달이 뜰 때까지 기다리려고 발걸음을 돌리려던 참이었습니다. 

멀리 연을 날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잘 됐다 싶었습니다. 다가가서 보니 한 가족인 듯 아빠와 엄마 그리고 딸인 것 같았습니다. 가오리연 2개를 날리고 있었습니다. 아빠로 보이는 분에게 ‘정말 보기가 참 좋습니다’하고 말을 건넸더니, 그분도 정월대보름 행사를 하는 줄 알고 왔는데 취소되었다는 말에 아쉽다고 했습니다. 그분에게 양해를 구하고 뒤쪽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딸아이가 연날리기 즐거움에 젖어 즐거워하는 모습이 마냥 좋아 보였습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어린 시절을 내가 연을 날리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어깨너머로 보고 흉내 내어 만든 연을 갖고 나갔습니다. 연을 날려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늘을 오르다가 그만 빙글빙글 돌더니 땅바닥에 곤두박질치기를 반복했습니다. 옆에서 형들의 연은 하늘 높이 잘 나는데 날지 않으니 답답했습니다.

원인을 알아야 하는데 이리저리 해봐도 똑같았습니다. 내 모습을 지켜보던 동네 형이 연을 조금 만지작거리며 연실을 조정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시 연을 건네받아 날려 보았습니다. 신기하게도 곤두박질치던 연이 꼬리를 흔들며 기분 좋다는 듯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손에 쥔 연실에서 전해지는 전율이 쾌감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바람에 춤추듯 하는 연에 마음을 담아 하늘로 날려 보던 시절이 아련합니다.     

세시풍속이 빛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도심에서 자란 아이들은 놀이 공간이 한정된 부분도 있습니다. 또 시대가 변한 만큼 아이들의 놀이도 예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나도 아들과 연을 만들어 날려 본 일이 없습니다. 어느 순간 우리는 전통문화인 세시풍속을 외면해 온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딸아이와 연을 날리며 즐기는 가족의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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