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에세이

사진을 찍기 시작한 이유

by 훈 작가 2024. 3. 9.

카메라를 사게 된 이유는 신혼여행 때문이었습니다. 필름 카메라 시대였습니다. 가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사진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습니다. 고민 끝에 강변역 앞 테크노마트 카메라 상가를 갔습니다. 사진을 잘 모르니 대충 찍어도 잘 나오는 카메라를 추천해 달라고 했습니다. 요즘 말로 가성비가 좋은 카메라를 사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신혼의 추억을 담은 사진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이후 아들이 자라면서 주말마다 카메라를 들곤 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되고 보니 어린 시절 내 사진이라곤 돌 사진 한 장밖에 없어 나중에라도 아들에게 원망을 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그런데 아들 녀석은 중학생이 되면서 사진 찍는 걸 싫어해 섭섭했습니다. 휴가 때 가족과 같이 여행가면 아들은 마지못해 찍어주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사진을 찍어야 하는 이유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가끔 회사에서 업무로 지방이나 해외로 출장 갈 때 이유가 생겼습니다. 출장보고서에 첨부할 사진이 필요했습니다. 직원들과 야유회를 갈 때나 체육행사 할 때도 찍곤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스마트 폰 보급이 대중화되면서 카메라의 존재감이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카메라가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필름 카메라는 종말을 맞았습니다.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이후 사진이 관심에서 멀어졌습니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유행처럼 번져 나갔습니다. 우리도 한 번 가야하는 거 아냐, 아내의 말에 별로 관심도 없었던 해외여행 때문에 비자금을 털어 카메라를 사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디지털카메라는 필름 카메라보다 다루기가 쉬웠습니다. 덕분에 큰마음먹고 가는 해외여행이 즐거웠습니다. 해외여행이라 그런지 아들도 싫어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해외여행 때문에 사진을 찍어야 하는 이유가 다시 생겼습니다.

서유럽 여행 때였습니다. 충전기와 여분의 배터리를 깜빡하고 비행기를 탔습니다. 행복해야 할 추억의 순간을 담지 못할 것 같아 마음을 졸인 적도 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기행문을 쓰겠다고 했다가 피곤한 나머지 메모만 하다가 결국은 쓰지 못했습니다. 아내는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하며 핀잔을 주었습니다. 이후부터 무슨 일이 있더라도 기행문을 썼습니다. 행복한 추억이 사진부터 글까지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습니다.

사진을 찍은 이유는 행복한 순간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었습니다. 단체 사진을 찍을 때 웃으라고 ‘김치’나 ‘치즈’라고 표정 지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억지로 하면 어딘가 모르게 티가 납니다. 그럼에도 웃는 표정을 짓는 이유는 행복한 순간을 남기고자 하기 때문일 겁니다. 굳이 찡그리거나 안 좋은 얼굴을 사진에 남길 이유는 없습니다. 그럴 거라면 차라리 안 찍는 게 나을 겁니다. 나중에 보게 되면 후회할 게 뻔합니다.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사진은 시간의 기억을 이미지로 남기는 힘이 있습니다. 특별한 과거의 순간을 보고 싶은 시점에 언제든 볼 수 있도록 해줍니다. 시간이 흐르더라도 과거의 행복했던 감정을 되살려 줍니다. 우리는 지나간 시간의 아름다웠던 순간을 기억하고 싶은 본능적인 욕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진은 그런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인간의 내면적 행복을 느끼게 합니다. 우리가 사진을 찍는 평범한 이유일 겁니다. 

여행과 사진은 땔래야 떼어 낼 수 없는 관계일 겁니다.좀 과장하면 사진 때문에 여행을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특히, 해외여행이 그렇습니다. 여행지에서 인증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여행은 언제나 누구나 할 것 없이 특별한 경험과 추억을 행복으로 연결해 줍니다. 카메라를 산 이유도, 사진을 찍기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뿡뿡  (132) 2024.03.13
사진은 한 편의 시(詩)다.  (138) 2024.03.11
나 홀로 행복하기(3)  (158) 2024.03.06
나 홀로 행복하기(2)  (157) 2024.03.03
비 오는 날과 막걸리  (164) 2024.02.1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