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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새가 되어 보고 싶다

by 훈 작가 2024. 3. 12.

막연하게 새를 동경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냥 단순하게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을 겁니다. 마음속으로 다시 태어나면 새가 되고 싶었습니다. 기껏해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작은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려 보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다는 것은 신의 축복일 것입니다. 인간에겐 왜 그런 축복을 주지 않았을까. 궁금했지만, 답이 없다는 걸 나중에 알았습니다. 

늦가을 철새가 먼 하늘을 날아가면 어디로 갈까, 어떻게 저렇게 높이 날까, 신기한 눈빛을 쳐다보곤 했습니다. 그 위로 가끔 비행기가 궤적을 남기고 흔적을 볼 때가 있었습니다. 새가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게 질투가 났는지, 인간은 비행기를 만들었습니다. 인간은 하늘을 나는 꿈을 이루어 냈습니다. 더 이상 새를 부러워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대신 언제쯤 비행기를 타 볼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긴 할까, 생각했습니다.

회사업무이긴 했지만, 자연스럽게 비행기 탈 기회가 생겼습니다. 어린 시절 소풍 가는 날을 기다리는 마음처럼 작은 설렘이 일렁였습니다. 아무리 안 그런 척하려고 해도 두근거리는 가슴은 속일 수 없었습니다. 순간 난 시간을 거슬러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굉음을 내며 활주로를 질주하던 비행기가 이륙하자, 묘한 긴장감이 가슴을 두드려 댔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기내창에 구름바다가 보였습니다.

그런데 새가 된 것 같지 않았습니다. 기내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고작 구름 위를 날고 있구나,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땅에서 보는 것과 사뭇 달랐습니다. 흔히, 사람들이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야.’하는 말이 거짓말 같았습니다. 어릴 때, ‘너 비행기 타 봤어?’ 자랑하던 녀석들이 별거 아닌 것 같고 그랬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막연했던 동경심이 사라졌습니다. 세상일이란 뭐든지 알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생각해 보면 새가 되어 보고 싶었던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하늘 저편은 어떤 세상일까? 그곳에 가 보고 싶었던 겁니다. 새들은 자유롭게 날아 그곳을 갈 수 있는 게 부러웠던 겁니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모를 때는 궁금합니다. 하지만, 가 보면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비슷할 겁니다. 궁금증을 해결하는 방법은 직접 가 보는 겁니다. 그게 여행입니다. 한자로 여행(旅行)은 떠나는 것(旅)이고, 돌아다니며(行) 겁니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라는 KBS-2 TV에서 주말마다 방송하는 프로그램을 즐겨 봅니다. 내가 새가 될 수는 없어도 그 프로그램은 새가 되어 날아가 하늘 저편에 있는 여러 나라를 보여 줍니다. 물론 눈요기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나마 하늘 저편의 여러 곳을 두루두루 보여 줍니다. 때론 가 본 곳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 보지 않은 곳이 더 많습니다. 내가 새가 될 수 있다면 가 보고 싶은데…. 현실은 내 마음 같지 않습니다.

한때 조용필이 불렀던 ‘돌아오지 않는 강’을 즐겨 불렀습니다. 애창곡은 아니었지만, 끝부분 노랫말이 생각납니다.

/겨울나무 사이로 당신은 가고/
/나는 한 마리 새가 되었네,/ 

겨울나무 사이로 봄은 갔습니다. 나는 한 마리 새가 되어 어디론가 떠나고 싶습니다. 그곳이 몇 년 전 작성해 놓은 버킷리스트 여행지입니다. 바로 남미와 아프리카 사바나 열대 지역, 그리고 오로라 빛이 아름다운 아이슬란드입니다. 어린 시절처럼 꿈에만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 시절 새를 동경했던 꿈처럼 말입니다. 

오늘도 비가 옵니다. 최근에 날씨 좋은 날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진 찍으러 나가는 날이 별로 없습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예전에 찍었던 사진을 보면서 멍 때리기 하다가 포스팅할 사진을 보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잠시 시간여행을 다녀온 겁니다. 사진 속의 새들도 지금 어딜 여행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곳이 녀석들의 버킷리스트였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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