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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역시 옷이 날개야!

by 훈 작가 2024. 2. 8.

패션은 권력이었습니다. 부정할 수 없습니다. 사실이었고 인류의 역사였습니다. 옷이 계급과 신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왕족이나 귀족은 화려한 색상의 옷으로 권력을 과시했습니다. 우리 조상만 그랬던 게 아닙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 그랬습니다. 평민이나 하류 계층일수록 볼품없는 단색 옷을 입었습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사람들은 옷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생활에 필요한 의식주(衣食住) 문제를 이야기할 때도 우리는 먹는 문제(食)나 주거 문제(住)보다, 입는 문제(衣)를 제일 앞에 내세운 것도 우연은 아닐 겁니다. 여기에 ‘옷이 날개’라는 말도 있고, 심지어 ‘못 입은 거지는, 얻어먹을 수도 없다’라는 말까지 있습니다. 


옷은 사람을 규정하는 마력(魔力)이 있습니다. 예비군복이 그렇습니다. 예비군 훈련받는 날이면 이상하게 건달 같은 행동이 나왔던 때가 있었습니다. 훈련장에 가면 다 똑같았습니다. 건달처럼 껄렁껄렁했던 그 당시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죽하면 멀쩡한 사람도 예비군복만 입으면 모두 개가 된다고 했겠습니까. 

하지만,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면 확 달라집니다. 언제 그랬느냐 싶을 정도로 행동이 바뀝니다. 행동과 말이 달라지고 점잖아집니다. 불량스러운 표정도 없어지고, 뱉는 말도 욕설이나 비속어 같은 거칠고 귀에 거슬리는 표현도 사라집니다. 보통 남자라면 젊은 시절 이같이 반항기 어린 경험을 한 번쯤 해봤을 겁니다. 


겨울은 나무들을 발가벗겨 초라하게 만듭니다. 우아했던 귀족의 신분에서 하루아침에 천민의 신분으로 추락합니다. 화려했던 지난날이 그리울 정도로 시련의 시간을 강요합니다. 정말 혹독하고 매정한 계절입니다. 멋진 패션을 자랑하던 꽃과 나무들은 하나같이 언제 그런 날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볼품이 없이 되어 시름속에 지냅니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에게도 옷은 날개였을 겁니다. 화려하고 우아했던 시절에 온갖 새들이 찾아왔는데 지금은 하나도 찾아오지 않습니다. 여름엔 사람들도 찾아와 같이 지내곤 했는데 지금은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맞나 봅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 계절이 싫은데 사람들의 인심마저 야박합니다.


나무들도 겨우 내내 이렇게 지내는 게 우울할 겁니다. 살려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나무들도 벌거벗은 모습을 보여주기 싫을 겁니다. 겨울비가 우울히 내리는 날이면 밤마다 서글픈 눈물을 흘리며 지냈을 나무들이 안쓰러워 보입니다. 나무들도 겨울옷을 입고 싶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차라리 하얀 눈이 내렸으면…. 

간밤에 눈이 왔나 봅니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온 세상이 하얗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카메라를 챙겨 밖으로 나왔습니다. 세상이 확 달라졌습니다. 겨울나무들이 모두 옷을 입었습니다. 그것도 하나같이 하얀 롱패딩 같은 패션입니다. 볼품없어 보이던 나무들이 화려한 변신을 했습니다. “맞아, 역시 옷이 날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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