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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꽃보다 향기

by 훈 작가 2024. 3. 7.

백화점은 늘 여자들로 붐비는 공간입니다. 딱히, 쇼핑할 게 없어도 눈을 즐겁게 합니다. 특히, 유명 브랜드 매장은 지나가는 여성 고객들의 시선을 한 번씩 붙잡아 놓습니다. 소비의 주체를 추상적으로 고객이라 하지만, 추측하건대 백화점 고객의 80%는 여자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눈에 띄는 사람이 대부분 여자입니다. 하기야 백수의 시간을 누리지 않는 이상 이른 시간에 남자들이 백화점에 올 이유는 없을 겁니다.

아내와 같이 백화점에 왔습니다. 신발 A/S 받을 것도 있고, 식품매장에 세일 상품도 살 게 있다고 해서 따라나섰습니다. 오픈 시간이라 매장은 다소 한가한 분위기입니다. 매장마다 진열된 상품은 특유의 조명을 받아서 그런지 유혹의 빛이 도드라집니다. 진열된 과일은 너무 탐스럽게 보이거나 신선해 보입니다. 다른 상품들도 보면 볼수록 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만듭니다. 매장은 늘 유혹과 절제의 다툼 공간입니다. 


쇼핑을 마치고 7층으로 갔습니다. 회원 고객들에게 서비스로 제공하는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였습니다. 뒤쪽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무언가 하고 봤더니 꽃 행사장 코너에 여자들이 몰려 꽃을 사려고 고르고 있었습니다. 얼굴을 보니 꽃처럼 환하게 웃음꽃을 머금고 즐거워합니다. 순간 아리따운 아가씨들도 꽃이 됩니다. 꽃 앞에서 봄처녀가 된 그녀들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좋아 보였습니다.


멀리서 봐도 꽃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가보고 싶어서 일어났습니다. 커피를 마시던 아내가 눈치를 차고 한마디 합니다.

"사진 찍으려고."
"꽃은 가까이 다가가서 찍어야 멋지게 나와."

자리에서 일어나 꽃을 팔고 있는 코너로 갔습니다. 이게 힐~링인가 싶었습니다. 눈으로 다가오는 색의 유혹이 마음을 흔듭니다. 정말 보기만 해도 그대가 다가와 나의 봄의 연인이 된 듯합니다. 물끄러미 유혹을 즐기며 스마트 폰을 들었습니다. 


"놀라지 마. 예쁘게 찍어줄게."
"이 바보, 꽃보다 향이야. 눈에 담는 것보다 마음에 담아야지."
"마음?"
"꽃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향기에 있거든, 그런데 사람들은 눈으로만 사랑하려고 해, 정말 바보 같아."

꽃을 찍으려다 움찔했습니다. 꽃이 한마디 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그리고 들고 있던 스마트 폰을 내리고 살며시 꽃의 향기를 맡으러 아주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습니다. 꽃과의 입맞춤은 그럴 수밖에 없나 봅니다. 순간 그녀의 상큼한 향기가 입이 아닌 코로 날아들어 왔습니다. 난 그때 깨달았습니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향기가 있기 때문이란 것을.


사진은 기본적으로 미학을 추구하는 장르입니다. 항상 어떡하면 피사체를 아름답게 담을 수 있을까, 생각하고 주제를 표현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꽃은 그 자체가 아름다움입니다. 많이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순간 멈칫했던 이유는 꽃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색의 아름다움을 담을 수 있어도 향기는 담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아름다움이 아닌데, 그게 아쉬웠습니다.

꽃은 아름다움을 상징합니다. 먼저 눈을 즐겁게 해 주고, 그다음 살며시 마음을 안아줍니다. 그 순간 누구든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꽃은 그런 존재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꽃을 좋아하고, 때론 흠모하게 됩니다. 우리가 꽃을 사랑할 수밖에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겁니다. 봄의 설렘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지난 화요일이 경칩이었습니다. 이제 남녘부터 꽃소식이 봄바람을 타고 올라올 겁니다.

우리는 꽃의 아름다움을 좇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상할 건 없습니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것은 인간적인 욕망입니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꽃의 아름다움도 좋지만, 꽃의 향기를 좇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미모가 출중하더라도 그 사람의 품성이 쓰레기통의 장미라면 별 볼 일 없을 겁니다. 꽃의 향기가 있어 아름다운 것처럼 나도 그런 삶을 살고 싶고 더 나아가 그렇게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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