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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여명을 만나는 시간(1)

by 훈 작가 2024. 3. 25.

“매직아워(Magic hour)”

사진을 배우면서 알게 된 말입니다. 사진 용어입니다. 강사 말로는 하늘이 파랗게(Cobalt Blue) 찍히는 해뜨기 전 30분과 해가 진 후 30분, 하루 두 번 있다고 했습니다. 멋있는 사진을 찍기에 가장 좋은 시간대라고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카메라로 풍경사진을 찍으면 아주 멋진 색감을 표현해 낼 수 있는 시간대가 여명(黎明) 또는 황혼(黃昏)이 물 들 무렵이라고 했습니다. 

널리 알려진 해외여행지 또는 TV 광고나 잡지에 나오는 유명한 관광명소 사진을 보면 욕심이 생깁니다. 나도 저런 사진을 찍어봤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나만 그럴까요? 아닐 겁니다. 누구든 그럴 겁니다. 사진을 취미로 하거나 좋아하는 사람, 특히, 블로그에 괜찮은 사진을 올리고 싶은 사람은 공감할 겁니다. 

그러나 낮 시간대에 찍어봐야 어림 턱도 없습니다. 단정 지을 수 없지만, 확률적으로 가능성이 아주 낮습니다. 하지만 매직아워를 시간대에 찍으면 다릅니다. 전문가 수준은 아니더라도 낮보다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실제 직접 찍어 보니 훨씬 나은 건 사실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딱 맞습니다.

이후 새벽 단잠을 포기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졸지에 부지런해졌습니다. 사진 때문입니다. 평소에 관심도 없던 여명을 자주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적어도 해뜨기 30분 전에 출사 장소에 도착해 준비하고 기다렸습니다. 기다림도 익숙해졌습니다. 나 홀로 사색에 빠져드는 시간도 많아졌습니다. 언젠가부터 고독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고독을 즐기게 해 준 주인공은 따로 있습니다. 여명입니다. 그녀를 만나기 전에 반드시 고독을 먼저 만나야 했고, 고독이 내 안에 들어와 속삭이는 것을 견뎌야 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어둠 속, 처음엔 따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고독이 마련해 준 사색의 시간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때론 바람과, 어떤 날은 맑은 물소리나 새들과 같이.

자연의 숨결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소리였습니다. 그 속에서 고독과 얘기하다 보면 저 멀리 동녘 하늘에 여명이 달려옵니다. 황홀한 순간입니다. 아!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형용할 수 없는 빛이 내 마음을 흔들며 유혹합니다. 나는 이 순간을 기다렸던 겁니다. 그러나 너무 짧은 시간입니다. 설렘에 빠져 있다간 그녀는 어느 순간 사라집니다.

카레라 렌즈를 들여다봅니다. 환희의 순간을 놓칠세라 셔터를 누릅니다. 그녀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0분, 최대한 아름답게 그녀의 모습을 담아야 하는데, 아직은 그 수준에 못 미칩니다. 아, 이래서 평생 공부를 해야 하는가 보구나. 그냥 찍기만 하면 될 줄 알았던 사진도 예외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더니. 

여태껏 이런 아름다움을 모른 채 여기까지 왔습니다. 사진과 인연이 없었다면 여명(黎明)의 빛을 만나지 못했을 겁니다. 새벽 단잠을 설치는 번거로움은 있습니다. 반면 여명의 빛이 내게 준 황홀함은 그걸 잊게 해 줍니다. 오히려 이 순간 살아 숨 쉬고 있음이 행복할 뿐입니다. 해가 뜨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이대로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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