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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여명을 만나는 시간(2)

by 훈 작가 2024. 3. 28.

밤과 낮은 명확하게 구분됩니다. 그러나 그 경계는 모호합니다. 칼로 무 자르듯 경계선이 명확하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밤에서 낮으로 넘어오는 시점이 그렇고, 다시 낮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시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밤과 낮의 주인은 다투지 않습니다. 지극히 평화롭고 아름답습니다. 오히려 어둠과 빛, 빛과 어둠이 스스럼없이 어우러져 자연의 초연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낮에서 밤으로 가는 경계 지점을 ‘황혼’이라 하고, 어둠을 벗고 낮으로 태어나는 시점을  ‘여명’이라고 합니다. 단, 하루도 그 시점이 같은 날이 없습니다. 날마다 밤과 낮의 경계선이 변합니다. 아주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시점을 두루뭉술하게 추상적인 언어로 우리는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게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관습적으로 그렇게 인정해 왔습니다. 황혼과 여명은 어디까지나 사전적 의미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한문으로 여(黎) 검을 여로, 검은색을 의미하고, 명(明)은 밝을 명으로, 낮을 의미 합니다. 따라서, 여명은 검은 밤에서 밝은 낮으로 바뀌는 순간을 뜻합니다. 어찌 보면 밤과 낮이 섞여 있는 지점입니다. 밤이라고도 할 수 없고, 낮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말이 여명(黎明)입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새벽과 여명도 명확하게 구분이 안 되는 단어입니다. ‘새벽’이란 뜻도 날이 ‘밝을 무렵을 의미’하는 말이니까요. 

아침을 여는 단어는 새벽일 겁니다. 새로운 출발은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모든 기회가 열려 있습니다. 그 지점에 여명이 있습니다. 여명은 희망을 안고 시작하는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 속에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부여하고 '여명'이란 단어를 우리의 삶 속으로 가져왔습니다. 어두운 밤이 지나면, 밝은 빛이 아침과 함께 찾아오듯, 우리는 어려운 과정을 극복하면 새로운 기회와 희망이 찾아올 것이라 믿으며 새로운 출발을 다짐합니다. 그때 여명이란 단어를 되새겨 보게 됩니다.

‘사진은 발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진가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명언입니다. 발품을 팔아야 마음에 드는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부지런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명을 만나려면 부지런해야 합니다. 말 그대로 맛있는 단잠을 포기해야 합니다. 매직아워 시간대에 맞추려면 불가피한 결정입니다. 어지간히 열정이 없으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진을 취미로 시작하면서 가장 힘든 선택이었습니다.

고통이 따르는 만큼 희열도 느낍니다. 여명의 아름다운 빛은 언제 봐도 가슴 벅찬 순간입니다. 하루는 어둠 속에서 태어납니다. 언제나 밤 0시입니다. 모두가 잠든 밤에 출생신고를 하는 겁니다. 여명은 어둠을 벗으면서 태어납니다. 어두운 밤에 잉태된 여명은 빛을 안고 함께 세상에 나옵니다. 그 순간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왜냐하면 여명은 모든 생명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여명이 물들면서 환희의 찬가가 들립니다. 숲 속에서 바람을 타고 새들의 노래가 들려옵니다. 잔잔했던 호숫가에 잠에서 깬 물고기가 기지개를 펼치며 물 위로 뛰어오릅니다. 그 소리에 일어난 물오리 떼가 하늘로 날아오르며 춤을 춥니다. 순식간에 여명을 반기는 축제 한마당이 펼쳐지는 겁니다. 나는 객석에서 이 모든 걸 즐기기만 하면 됩니다. 마치 나를 위한 환희의 교향곡을 연주해 주는 것 같습니다.

여명을 만나는 시간, 찬란한 빛의 향연과 환희의 교향곡은 나를 행복하게 해 줍니다. 짧게 끝나는 시간이 아쉬운 나머지 그 시간을 담아 봅니다. 유감스럽게도 환희의 교향곡은 마음으로만 담아 가려합니다. 축제가 다 끝날 무렵 여명은 무대 위에서 퇴장을 서두릅니다. 이별의 시간입니다. 다음 무대의 주인공 때문입니다. 붉게 떠오르는 태양 뒤로 여명이 자취를 감춥니다. 마지막 순간, 다시 한번 셔터를 눌러봅니다.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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