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hoto 에세이/행복, 그대와 춤을

사진 : 환상을 꿈꾼다.

by 훈 작가 2024. 3. 20.

종이비행기를 접어 하늘로 날려 봅니다. 하지만, 이내 하늘로 치솟다가 저만치 날아가 떨어집니다. 뻔히 알면서도 비행기를 다시 주어 날렸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높이, 더 멀리, 더 오랫동안 날아가길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어릴 때 날렸던 종이비행기는 무지개 같았던 환상이었고, 날아 보고 싶은 꿈이었습니다. 

막연한 꿈이 환상이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종이비행기 대신 환상이 상상 속에 날개를 펴고 마음속에 날아다녔습니다. 가끔은 그 환상이 밤에 꿈속에 들어오곤 했습니다. 낮엔 환상과 함께 놀고 밤엔 그 환상을 꿈속에 초대해 즐기곤 했습니다. 실체도 없는 환상과 꿈이 낮과 밤을 오가며 내 안에 날아다녔습니다. 

사진을 즐기면서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환상이 꿈속에 들어오곤 합니다. 하루 전날, 출사 장소를 정하고 날씨(일기예보)를 살펴봅니다. 그리고 어디서 어떻게 찍으면 환상을 만날까, 그려봅니다. 그러다 잠들면 다시 설레게 만듭니다. 환상인 줄 알면서 꿈속으로 그걸 불러들였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출사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환상은 깨지지 않습니다.

사진은 환상을 현실에서 만나는 여행입니다. 환상은 출사지에 도착한 후 날아갑니다. 스멀스멀 저 멀리 날아가는 환상은 꿈속에서 만나던 그녀가 아닙니다. 환상은 꿈의 빛이고, 현실은 살아있는 생명의 빛입니다. 그 속에 바람이 있고, 생명의 숨결이 있습니다. 그 빛은 변화무쌍한 자연의 실체입니다.

출사지에서는 환상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 순간부터 꿈에서 만났던 환상의 빛을 찾아야 하는데 어디에도 없습니다. 자연이 내게 온전하게 만들어 준 그 빛만을 카메라에 담아야 합니다. 가상의 공간에서 즐겼던 환상과 데이트는 신기루에 불과할 뿐입니다. 현실에서는 오로지 날씨가 연출하는 그림을 렌즈로 담아낼 뿐입니다. 

때론 하늘이 야속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환상 속에 그렸던 그림이 막상 출사지에 도착하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 야속함은 금방 사라집니다. 날씨는 늘 신의 영역이기에, 현실에서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순리라는 걸 인생 여정에서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하늘을 원망할 겨를 없이 카메라를 꺼내게 됩니다. 

출사 현장은 현실입니다. 꿈에 만났던 환상이 없다고 온 길을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출사지에서 내가 만나고 있는 지금 순간을 즐겨야 합니다. 사진을 찍으러 가는 날마다 환상적인 그런 사진을 찍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대작(大作)의 환상은 늘 그렇게 마음에 머물다가 사라졌습니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겠지, 하며 셔터 타임을 즐겨왔습니다. 

현실에서 환상은 없습니다. 다만, ‘환상적이다’라는 표현만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꿈을 꿉니다. 왜 꿀 까요? 보통은 현실에서 벗어나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일 겁니다. 그러나 사진은 다릅니다. 사진의 세계에서는 ‘환상’ 을 ‘환상적이다’ 는 표현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현실에서 환상의 꿈을 좇는 사진은 즐거움과 행복이 있습니다.

'Photo 에세이 > 행복, 그대와 춤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출을 만나다  (41) 2024.04.16
꽃을 만나는 시간  (117) 2024.04.12
열애  (134) 2024.03.14
누워서 봐야 아름다운 꽃  (174) 2024.02.21
'슬픈 연가' 의 반전  (160) 2024.02.1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