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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행복, 그대와 춤을

누워서 봐야 아름다운 꽃

by 훈 작가 2024. 2. 21.

연일 비가 내립니다. 봄을 재촉하는 비려니 생각했는데 장마철 비처럼 내립니다. 하늘 본 지 오래되었습니다. 별 볼 일 없는 우울한 하늘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날씨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입춘도 지났고 엊그제는 우수였습니다. 남녘에서는 벌써 꽃소식이 들려옵니다. 제주에는 유채꽃이 노란 물결을 이루고, 양산 통도사 매화꽃(자장매)도 피었다고 하니 봄이 성큼 한 발짝 곁에 왔음을 느낍니다. 

봄의 알리는 전령사 중의 하나가 매화꽃입니다. 매화는 사군자(四君子)의 하나로 옛날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매화는 꽃이 아나라 나무입니다. 꽃이 필 때만 매화이고, 꽃이 지면 매실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매화를 나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매화와 매실을 따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그런 모양입니다.  어차피 꽃은 지려 피는 것이고, 지는 대신 열매를 남기려는 게 자연의 이치입니다. 

혹시 누워서 하늘을 본 적 있나요. 별로 없을 겁니다. 그냥 볼 수 있는 하늘을 굳이 누워서 볼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누워서 봐야 황홀할 때가 있습니다. 밤하늘의 별입니다. 태어난 곳이 시골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한여름이면 집 앞마당에 모깃불을 피워 놓고 깔아 놓은 멍석에 누워 본 적이 많습니다.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별들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황홀했다는 표현이 딱 맞을 것 같습니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돼지는 넘어지거나 사지가 묶여 죽으러 갈 때만 하늘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돼지의 목구조가 땅을 향하고 있고, 머리를 들어봤자 45° 이상 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 돼지는 언제나 먹을 거만 찾아 꿀꿀대며 땅만 보고 삽니다. 넘어지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평생 그렇게 지내다 죽습니다. 불쌍하게도 죽으러 가는 날 하늘을 보게 됩니다. 그때 아! 하늘이 이렇게 아름다웠나 할 겁니다.

뜬금없이 별과 돼지 얘기를 꺼낸 이유는 와룡매(臥龍梅) 때문입니다. 사진은 현충사에서 찍은 매화입니다. 와룡매로 부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매화나무가 마치 용이 누워서 이어가듯 가지를 뻗어 꽃을 피우기 때문입니다. 같은 매화라도 와룡매는 그냥 지나치기 쉽습니다. 눈으로 보기에 별로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사람의 눈높이에서 보면 다른 매화꽃보다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진의 미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더욱 그렇게 보입니다. 우리는 항상 고정된 시선으로 사물을 보는 경향이 많습니다. 밤하늘의 별도 그렇습니다. 그냥 고개를 들어 한 번 보는 것보다 누워서 보면 확연히 다릅니다. 쏟아지는 별빛이 이루 말할 수 없는 황홀함을 선물합니다. 그런데 그냥 고개를 들어 한 번 보고 스칩니다. (비유하긴 그렇지만) 어쩌면 그게 돼지가 땅만 보고 지내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해 3월이 생각납니다. 와룡매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망설였습니다. 본능적으로 주변을 살피며 눈치를 보았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것도 같고, 창피스러운 느낌도 들 것 같았습니다. 그깟 사진이 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주저하다가 눈 딱 감고 땅바닥에 누웠습니다. 와룡매(臥龍梅)의 멋진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와룡매(臥龍梅)라 부르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하늘에 용 한 마리가 날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누워서 보니 와룡매의 진가가 확연하게 느껴집니다. 어린 시절 누워서 보았던 한여름 밤의 별들처럼 홍매화가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마치 헤어진 첫사랑의 연인처럼 고혹적인 매력을 뿜어내는 것 같습니다. 난 그대와 누워 하늘을 봅니다. 누구라도 이 자리에 누우면 그대의 연인이 될 것 같습니다. 전에 느껴보지 못한 황홀함이 행복으로 다가오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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