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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캐나다

로키의 보석 ‘에메랄드 호수’

by 훈 작가 2024. 3. 21.

호수의 발견은 우연일 수 있지만, 호수에 이름을 붙인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이 호수의 이름은 인간의 내면에 있는 욕망에 대한 표출이라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왜냐하면 인간의 욕망을 상징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보석이고, 이 호수는 보석이 지닌 아름다움에 견주어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이 때문에 톰 윌슨이 에메랄드 호수라고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사실 이름을 어떻게 지었는지 그다지 중요하지 않지만 호수의 이름이 에메랄드인 이유가 우연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 않을까 나름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에메랄드빛이 품고 있는 아름다움은 오래전부터 인간을 매혹시켜 왔다. 에메랄드 보석은 아름다움과 미래, 신록의 계절인 5월을 상징하는 보석이다. 에메랄드의 초록색은 생명의 색, 빛의 색, 영원불변의 봄의 색이다. 몇백 년 동안 에메랄드의 초록은 아름다움과 영원한 사랑을 상징해 왔다. 고대 로마에서도 초록은 사랑과 미의 여신인 비너스의 색이었다. 에메랄드 호수(Emerald Lake)는 캐나다 관광 안내 책자에 ‘로키의 보석’이라고 소개되어 있고,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 주 요호 국립공원 (Yoho National Park) 내에 있다. 이 호수는 해발 1,302m 높이에 있으며 천혜의 비경을 자랑한다. ‘요호(Yoho)’라는 말은 원주민 어(Cree)로 awe라는 감탄사를 의미한다. ‘요호’라는 말은 영어로 ‘Wow!’라는 감탄사다. Wow!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호수가 에메랄드 호수다. 


사람들은 산에 올라가면 ‘야호!’ 하고 크게 소리를 지른다. 캐나다 원주민은 ‘야호!’ 대신,  혹시 ‘요호(Yoho)!’ 하고 크게 소리 지르는 것은 아닐까. 물론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다. 어찌 보면 ‘야호!’나 ‘요호(Yoho)!’는 비슷한 어감이다. 과연 나만의 생각일까. 사실, 에메랄드 호수가 아름다운 것은 물빛만이 아니다. 호수 주변에 하늘을 찌를 것 같은 침엽수림도 이에 못지않다. 이곳은 여름에는 많은 비가, 한겨울에는 눈보라가 몰아치기로 유명한 곳이다. 이런 이유로 호수 주변 저지대에 독특한 식물생태계가 형성되었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습한 숲 지대의 전형적인 침엽수들과 호수가 아주 잘 어울리는 풍경이 아닌가 여겨지는 대목이다.

 

방금 전 내리던 비가 그친 호수 위로 비구름이 몸을 풀고 날아간다. 호수는 다시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에메랄드 보석빛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여행자는 유혹의 빛에 감탄사를 꺼낼 수밖에 없다. 아마 물감을 풀어도 이런 빛을 만들 수 없을 것 같다. 수면과 맞닿아 대칭을 이루며 호수 물속으로 나무들이 드러누우며 데칼코마니 풍경을 자연스럽게 그려냈다. 정말 환상적인 비경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는 왜 아름다운 풍경에 빠져드는가. 태초에 조물주가 인간을 만들 때 우리 영혼에 불어넣은 것이 인간의 욕망이라면, 욕망은 본질적으로 인간이 갖지 못한 결핍 본능일지도 모른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빠져들고 싶고, 아름다운 보석을 소유하고 싶은 인간의 탐욕은 애초부터 영혼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성과 감성이 자리 잡으면서 싹이 튼 게 욕망이라 생각된다. 인간의 욕망은 원초적인 결핍 현상이라 여겨지는 이유다. 에메랄드 호수를 만나 평소에 드러내지 못한 욕망의 불씨를 만져 보았다. 사실, 호수의 물과 보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지만 호수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 속에서 인간의 욕망을 유추해 보는 건 상상이고 자유다. 원초적인 원인의 제공은 이 호수를 발견한 톰 윌슨(Tom Wilson)이다. 그가 호수 이름을 ‘에메랄드’라는 보석의 이름을 차용하지 않았다면 애초부터 욕망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꺼내올 이유가 없었다.


에메랄드 물빛 위로 빨간색 카누가 물살을 가르며 가고 있다. 물빛에 젖은 카누가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이 호수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수채화 같은 풍경을 렌즈에 담는 일이다. 아름다운 순간을 간직하고 싶은 것 또한 인간의 욕망이다. 사진은 그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미학이고, 여행자도 이런 인간의 욕망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여행은 인간의 결핍을 채워주는 욕망이자 힐~링의 여정이다.

욕망의 불씨를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행을 통해서 무엇을 채울 것인지는 정해진 답은 없다. 에메랄드 호수는 보석이 아니다. 그러나 보석 같은 아름다움이 있기에 우리는 거기에 빠져든다. 그간 한 번도 갖지 못했던 보석.  에메랄드 호수를 보며 욕망을 채워 본다. 하필이면 보석의  이름을 품고 있을 게 뭐냐.  떠나기 전 속물근성을 호수에  던지고 대신 추억이나 담고 떠나야겠다. 

 

여행은 긍정을 담은 욕망의 언어이자 설렘을 자극하는 영혼의 언어다. 여행이란 명사에는 인간의 욕망을 담은 want, take, have 동사가 있다. 여행은 이 3개의 동사를 적절하게 조화시켜 내 안에 꿈틀거리는 욕망을 담고 위로받는 것이다. 적어도 캐나다 여행이 에메랄드 호수 같은 보석을 닮은 욕망이란 주어에 want, take, have 동사가 멋지게 어우러진 문장을 만드는 여정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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