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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캐나다

천상의 낙원 ‘부차트 가든’

by 훈 작가 2024. 9. 2.

빅토리아의 마지막 여정은 부차트 가든이다. 한해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무려 4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원래는 시멘트 생산을 위한 석회암 채굴장이었던 이곳을 1904년 부차트의 아내가 제니 부차트가 작은 침상원(沈床園)을 만들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가이드는 말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가든’이 아니다. 말 그대로 의미를 지닌 Garden이다.
 
면적이 22만㎡에 이른다. 정원은 Sunken Garden, 장미 정원, 일본 정원, 이탈리아 정원, 지중해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름답다는 수식어를 몇 번이고 반복해도 부족할 정도로 탄성을 자아내기 충분한 곳이다. 잘 가꾸어진 잔디밭과 산책로 조화롭게 연결되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입구부터 분위기가 압도하는 느낌이 들었다. 짙은 초록빛과 우거진 숲길이 여행객을 반긴다. 그러다 갑자기 천상의 낙원 같은 풍경이 눈 아래 펼쳐졌다. 부차트 가든을 상징하는 Sunken Garden이다. 누구라도 잠시 시선이 마비될 수밖에 없는 풍경이 가로막는다. 이곳을 찾는 사람이라면 모두 여기서 인증사진을 안 찍을 수 없다.
 
이게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졸지에 포토 존이 되어 버린 장소에 줄지어 순서를 기다린다. 하나같이 행복한 표정이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 들어오면 누구나 즐겁기 마련이다. 우리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서로 번갈아 가며 사진을 찍어 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컷을 더 추가해서 찍고 난 뒤 물러선다.

이젠 계단을 따라 아래쪽 Sunken Garden으로 내려갔다.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들어온 여행객들은 모두 요정이 된 기분을 만끽한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얼굴에 ‘난 지금 너무 행복해’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당연하다. 꽃 앞에선 누구든 예의를 갖추기 마련이다. 누구든 미소로 반기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여행은 더할 나위 없는 힐링이다. 천사의 화원이라 찬사를 보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자연스럽게 때 묻는 번뇌가 시나브로 사라진다. 산사에 들어가 부처님 앞에서 만나 이러쿵저러쿵 불공을 정성껏 드린다 해도 일순간에 번뇌가 사라질 리 없다. 그런데 여기선 그게 가능하다.
 

모처럼 여기저기서 감탄사를 연발하는 소리가 들린다. 온갖 색상이 초록과 어우러져 춤춘다. 따뜻한 봄날 왈츠곡의 선율이 힐링의 요정이 되어 가슴을 씻어준다. 그런데 2% 부족한 느낌이 든다. 그게 무얼까? 상상 속의 음악이 아니라 실제 숲 속의 새들의 노래가 들렸으면 싶다. 내가 너무 욕심이 과한 걸까.
 
눈은 그지없이 즐겁다. 그런 아쉬움이 내게 뭔가 부족함을 일깨웠다. 천상의 낙원 같은 곳에 들어왔는데 아는 게 없다. 텅 빈 지식의 창고가 여행의 즐거움을 허전하게 만든다. 모르는 꽃들이 너무 많다. 숲을 이루는 나무 이름도 모른다. 눈만 즐거웠지, 무식함이 여행자의 마음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미안했다. 앙증스럽고 요정 같은 많은 꽃님에게 말이다. 이름을 불러주고 싶은데 그냥 꽃이라고만 불러주어야 했다. 정말 예의가 아니다.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마냥 반겨 주는 꽃들을 보면 나도 꽃처럼 살고 싶다. 미운 사람이든 보기 싫은 사람이든 늘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니 여기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곳 같다. 아니 멈춘 것 같은 착각을 불러온다. 아마도 꽃에 취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마치 나비가 꽃향기에 취해 천방지축 정신 못 차리고 즐거워하며 날아다니는 기분이다. 다행인 건 너무 취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을 못 할 정도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곳이 있다. 외도 보타니아다. 섬 전체를 이국적인 풍경으로 만들어 놓은 관광농원인데, 아마도 여길 보고 벤치마킹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오래전 가 본 기억으로는 동백나무 숲, 선 샤인, 야자수, 선인장 등 아열대식물이 많았고, 편백 나무숲 사이로 난 천국의 계단과 정상에 비너스 공원도 이채로웠던 풍경이었다.
 
새삼스러운 옛날 기억이다. 그때도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감탄사를 연발했었는데, 그에 비하면 부차트 가든은 말문이 막힐 정도다. 어떤 수식어로도 외도 보타니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쓸데없는 생각이 잠시 나를 기죽게 만든다. 차라리 용인의 에버랜드라면 어느 정도 비교가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여긴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선정한 세계 10대 정원이란다. 자존심 대결해 봤자 의미가 없을 것 같다. 포크 레인 앞에서 곡괭이로 땅 파는 걸 자랑하는 거나 다름없다. 어쨌거나 캐나다로 여행 온 것은 잘한 결정인 것 같다. 남은 일정은 더 기대된다. 캐나다 로키의 자연은 어떤 감동으로 우리 거족을 흥분시킬까.
 
사실 무엇보다도 가슴 설레게 하는 건 나이아가라 폭포다. 생각만 해도 기분은 구름 위를 걷는다. 잠시 생각이 삼천포로 빠졌다. 빅토리아 일정으로 부차트 가든으로 끝난다. 점심을 먹은 후 Vancouver로 나가 Calgary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 Vancouver와 Victoria 일정은 워밍업에 지나지 않는다. 캐나다 여행은 이제 시작이다.

그럼에도 부차트 가든 투어는 만족스러웠다. 이곳이 채석장이었다는 사실을 누가 믿겠는가. 무엇보다 이곳을 만든 부차트의 아내 제니 부차트의 열정에 진심으로 찬사를 보내고 싶다. 부차트 가든은 한 여인의 위대한 역작이자 인간 승리의 현장이다.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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