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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봄꽃이 노란 이유

by 훈 작가 2024. 3. 22.

/나리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불고요./
/병아리 떼 쫑쫑쫑, 봄나들이 갑니다./

봄나들이 동요입니다. 어린 시절 누구나 즐겨 불렀을 겁니다. 노란색이 도드라지는 봄입니다. 왜냐하면 봄이면 노란 꽃들이 피기 때문입니다. 개나리꽃도 그렇고 생강나무꽃이나 산수유꽃도 노랗습니다. 이미 남쪽의 봄은 산수유꽃이 한창이라고 합니다.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아주 오래전 일이 생각납니다. 수업이 끝나고 초등학교 정문을 나설 때였습니다. 모퉁이 담벼락에 아이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궁금해 달려가 보았습니다. 종이 상자 안에 노란 병아리가 가득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병아리를 파는 아저씨였습니다. 삐악삐악 하는 소리가 엄마 닭을 찾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귀엽기도 하고 가엽기도 했습니다. 개중에는 집에 갖고 가서 놀겠다고 사 들고 가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한번 키워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까 말까 망설이다 한 마리 사 들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죽고 말았습니다. 뭘 잘못했는지 속상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화단 한쪽에 땅을 파고 묻었습니다. 

그해 봄이 다 지나갈 때까지 나는 우울했습니다. 괜히 사 왔나 싶었습니다. 후회가 들었던 겁니다. 나 때문에 죽은 것 같아서 녀석에게 정말 미안했습니다. 녀석을 잘 키워 닭이 되면 또 알을 낳을 거고 그 알을 다시 부화시켜 병아리가 되면 또 키우고 해서 알을 얻을 텐데 하는 생각이 물거품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파는 병아리는 애초부터 약해서 키우기 어려운 것이라는 걸. 코흘리개 아이들 푼돈을 챙겨가려는 어른들 속셈이었던 겁니다. 그런 속셈을 모르고 나는 병아리를 키워보겠다고 한 겁니다. 순수했던 한 소년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던 봄이 되어 버렸습니다. 희망이 싹트는 봄을 우울하게 만들었던 겁니다. 


어린 시절 그 병아리도 노란색입니다. 녀석이 노란색인 이유도 봄과 같이 희망을 가슴에 안고 알에서 나왔을 겁니다. 그러나 녀석은 희망의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봄꽃이 노랗게 물들어 가는 걸 보니, 아마 녀석도 그때 못다 피운 꿈을 꽃으로나마 이루어 보고 싶어서 이렇게 노란 꽃으로 태어났을지도 모릅니다. 

춘삼월의 봄이 노랗게 물들어 갑니다. 산수유도 꽃망울을 터트려 몽글몽글 반짝입니다. 노란색은 언제 봐도 밝습니다. 봄이 희망을 상징하는 것은 노란 꽃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봄꽃이 노란 이유는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겨우 내내 짓눌렀던 회색빛 공간에 긍정의 메시지가 채워지고 있는 듯합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3월 중순이 지나갔는데 변덕스러운 날씨도 그렇고, 꽃이 피는가 하면 찬 바람이 불고 눈이 옵니다. 기다리던 봄이 왔는데 이를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마지막까지 아우성치며 시위하는 듯합니다. 마치 암울했던 1980년 서울의 봄처럼. 그래도 봄은 희망의 싹을 꽃으로 터뜨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얼마나 봄을 그리워했으면 잎보다 꽃이 먼저 필까. 성질이 급해서, 아니면 마음이 급해서,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노란색일까. 솔직히 모릅니다. 그렇지만 노란색인 이유는 딱 하나일 겁니다. 빨리 희망의 메시지를 알리고 싶어서가 아닐까. 설령 아니더라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봄꽃이 노란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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