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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황혼 블루스(2)

by 훈 작가 2024. 3. 27.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 우는 두견새야./
/열여덟 딸기 같은 어린 내 순정/
/너마저 몰라주면 나는, 나는, 어쩌나./
/,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소양강 처녀’ 1절입니다. 아주 오래된 노래입니다. 영화배우 김태희가 아니라, 가수 김태희가 불러 1970년대 유행했던 노래입니다. 이 노래를 안다면 나이가 들었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한때 나도 즐겨 불렀습니다. 뜬금없이 노래가 생각난 이유는 노래 첫 소절에 ‘황혼이 지면’이란 말 때문입니다.
 
노을이 지는 풍경을 보면 나도 모르게 이 노래가 생각납니다. 사랑이 그리워서 애를 태우는 소양강 처녀 같은 마음 때문이 아닙니다. 누구든 인생 여정의 종착역으로 가는 길목에 ‘황혼’이란 간이역에 서게 됩니다. 그 역이 시골 간이역이라면 한가로울 텐데, 아파트 단지 노인정이나 탑골공원 분위기가 연상됩니다.

슬픈 이야기이지만, 잠시 멈추었던 ‘황혼’ 역을 지나면 종착역에 도착합니다. 내리면 갈 곳이 딱 한 군데입니다. 요양(병)원일 겁니다. 우리 시대 슬픈 자화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자식들에게 떠밀려 갈 곳일 겁니다. 표현이 어울릴지 모르지만, 살아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역사 속의 ‘유배지’나 다름없는 곳입니다.
 
‘유배지’와 다른 건 면회가 자유롭습니다. 그곳의 풍경은 늘 우울합니다. 부모님 손을 꽉 붙잡고 눈물 콧물 흘리며 마음 아파하는 이들은 여자(딸)입니다. 뻘쭘하게 얼굴로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는 사위입니다. 복도에서 빨리 집에 갔으면 하는 스마트 폰을 보는 여자라면 며느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끔은 가족끼리 알뜰살뜰 준비해 온 밥이며 반찬이나 죽이라도 먹으라고 떠먹이는 자식은 딸입니다. 대개 아들은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딸이 사다 놓은 음료수 하나 까 마시고 이내 사라집니다. 금쪽이처럼 키워 놓은 아들은 따분한 표정으로 먼 산 만 쳐다봅니다. 늦었지만. 딸자식이 낫다는 걸 알게 됩니다. 미안한 마음에 눈물만 흘립니다.

왜 몰랐을까. 속절없이 마음만 미어집니다. 모르긴 해도 그렇게 생각됩니다. 요양원에 계신 어머님을 면회하고 오면, 늘 마음이 무겁습니다. 요양원의 이런저런 풍경이 씁쓸한 건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현실이고, 내게 앞으로 다가올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해가 진 후의 황혼의 풍경은 너무 아름다운데, 인생의 황혼은 그게 아닌 것 같아 우울합니다.
 
창살 없는 감옥, 의미 없는 삶을 꾸역꾸역 하루하루 살아가야 하는 인생의 ‘황혼’. 그 모습이 나의 미래가 아니었으면 하는데…. 후회는 늘 늦게 찾아옵니다. 좀 잘할걸. 그때 왜 못했을까. 저 멀리 도망가는 세월이 야속합니다. 겉으론 아닌 척하며 나 혼자 눈물을 삼킵니다. 해 저문, 인생길에 황혼이 지면 ‘소양강 처녀’ 노래가 생각날 것 같습니다.
 
꽃지해변에 황혼이 물들고 있습니다. 하루가 시작되는 여명의 빛처럼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다른 게 있습니다. 새벽의 문을 열며 다가오는 여명의 빛은 희망인데, 황혼의 빛은 모든 걸 내려놓아야 하는 이별의 빛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내려놓고 마무리하느냐입니다. 어차피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거, 나 자신이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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