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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나도 꽃이 되어 주고 싶다

by 훈 작가 2024. 4. 25.

참을 수 없는 유혹은 참지 않는 게 낫습니다. 그런 유혹이라면 거부하거나 참는다고 약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경계할 이유도 없습니다. 더더욱 눈치 볼 필요도 없습니다. 유혹이 내민 손을 모른 척하고 따라가면 그만입니다. 왜냐하면 꽃의 유혹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꽃의 아름다움에 이끌림은 참기 어려운 게 사실이니까요. 그러니 시선으로 다가감은 마음의 창을 자극하는 것이고, 마음이 움직여 꽃에 머무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사실 처음엔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유혹의 주체가 무엇인지. 꽃밭에 들어가기 전까지 봄의 유혹인지 꽃의 유혹인지 헷갈렸습니다. 봄날, 문을 열고 나오니 유채꽃밭이 보였습니다. 꽃을 보기도 전에 꽃이 먼저 손짓합니다. 유채꽃의 유혹을 기다려 온 것은 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꽃들의 전쟁에 몸 사리던 유채꽃이 장미꽃이 피기 시작하면 자신들이 뒤로 밀리는 걸 알고 기습작전을 벌이듯 일제히 터트려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나는 여기에 말려들어 그냥 꽃밭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어쨌거나 꽃밭에 들어오니 기분 좋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유혹이란 말이 나쁘지 않습니다. 이런 유혹이라면 얼마든지 즐기고 싶습니다. 덩달아 나도 꽃이 되어 봅니다. 유채꽃밭에 들어오니 노란 미소에 미혹됩니다. 그 미소에 마음을 빼앗긴 나도 미소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소엔 미소로 답하는 건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외면하면 매너가 아니니까요. 

나만 그런 줄 알았습니다. 아닙니다. 꽃밭에 들어온 이들은 다 똑같았습니다. 그들도 나처럼 꽃밭에 들어오자, 모두 환한 웃음꽃을 피웁니다. 그러고 보니 애당초부터 유혹이라고 생각한 것 자체가 잘못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쩌면 꽃의 유혹이란 말은 일종의 고정관념 같은 표현으로 무의식 중에 나온 말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꽃이 좋아 온 것인데 에둘러 유혹이라 한 것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꽃은 봄과 함께 아름다움을 만들고, 우리는 그걸 즐기면서 행복감에 젖습니다. 봄과 꽃의 만남, 꽃과 우리의 만남은 자연이 만든 향연입니다. 이에 초대된 우리, 아름다움을 즐깁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마음엔 꽃밭이 없기 때문입니다. 꽃밭이 있다면 노란 유채꽃에 미혹되지 않았을 겁니다. 어쩌면 마음의 꽃밭은 있긴 한데 있는 줄도 모르고 꽃을 심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우린 누군가가 나에게 꽃이 되어 주길 바라는 마음만 있지, 누군가에게 꽃이 되어 주려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생각해 보니 나도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참 이기적이었습니다. 내 마음에 꽃밭을 가꾸었더라면 누군가와 같이 아름다움을 나누고, 함께 했을 터인데. 그랬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 세상은 이렇게 사는 게 아닌데…. 갑자기 부끄러움이 밀려듭니다.

아름다움을 좇는 건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걸 즐기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소유하려는 본능입니다. 하지만 소유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기에 카메라에 담아 봅니다. 집에 가지고 가 함께 할 수 없기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습니다. 오로지 나를 위해 이 아름다운 꽃밭을 곁에 두고 싶습니다. 지난봄에도 그랬듯이 오늘도 난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 다행입니다. 

꽃의 아름다움은 미혹에 빠지게만 하지 않습니다. 기쁨을 주고 행복을 느끼게 해 줍니다. 때론 슬프고 아플 때 위로해 줍니다. 누구든 찾아오는 가리지 않고 똑같이 반겨줍니다. 겉만 아니라 속까지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꽃이 지닌 진정한 아름다움입니다. 우리는 여태껏 이걸 잊고 지냈거나 간과했습니다. 나만 즐겁고 때론 위로받으려 행복을 느끼면 그만이었던 겁니다. 부끄럽다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늘 받기만 했으니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당연한 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누군가에게 꽃이 되어 주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꽃을 보며 고마운 생각도 들고 미안한 생각도 듭니다. 이러면서도 사람들은 만물의 영장이라 세상의 주인인 양 살아왔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만든 말처럼 착각은 자유입니다. 더 겸손했어야 하는 삶을 살았어야 했는데…. 

후회는 늦은 깨달음입니다. 생각해 보니 내 마음 한쪽에 작은 꽃밭을 만들어 가꾸었더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이제 철이 좀 드나 봅니다. 하찮게 여겼던 꽃도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행복을 느끼게 해 주었는데, 나는 바보처럼 살았나 봅니다. 네가 나에게 꽃이 되어 준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꽃이 되어 주고 싶은 봄입니다. 유채꽃밭을 나오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꽃이 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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