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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고독을 만나는 시간

by 훈 작가 2024. 5. 8.

고요 속에 고독이 있습니다. 시간의 침묵은 늘 고요했고 고독했습니다. 신이 밤이란 공간을 시간으로 정의했을 때 밤은 고요와 침묵의 시간이었습니다. 인간은 고독을 잊으려 밤새 침대로 들어가 보냅니다. 고독이 주는 외로움의 시간이 싫었던 겁니다. 시간이 잠든 밤, 세상은 잠시 고요 속에 잠듭니다. 적어도 밤이 퇴근할 때까지.
 
고요함이 짙게 물든 새벽, 고독이 눈뜹니다. 시간이 침묵의 빛을 깨우고 일어납니다. 밤에서 빠져나온 빛, 여명의 옷을 갈아입고 나설 채비를 서두릅니다. 시간은 빛과 어둠을 섞어 고요한 세상을 깨웁니다. 하지만, 그 어떤 소란도 없습니다. 빛은 정적으로 묻혔던 시간의 침묵을 거두어 내고 있을 뿐입니다.

안개가 자욱한 새벽, 아침까지 고요 속에 보낸 외로움은 고독과 함께 일어납니다. 사실 외로움과 고독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실체가 분명하지 않지만 존재할 땐 항상 같이 붙어 다닙니다. 상황에 따라 단어의 선택 문제일 뿐입니다. 선택은 표현하고 싶은 언어의 뉘앙스와 감정에 따라 좌우되지만 딱히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고요 속에 어둠이 가시면서 몽환적인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이런 분위기엔 외로움보다 고독이란 표현이 더 어울려 보입니다. 외로움이란 말은 이별이 남기고 간 사랑의 상처에서 불쑥 튀어나온 말처럼 느껴집니다. 자욱한 안개, 여명의 빛 그리고 나, 몽환적 풍경 속에 아침 해가 침묵을 깰 때까지 기다립니다.

추상적인 단어를 대할 때 현학적인 위선으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외로움과 고독도 그런 범주에 속하는 말일 수 있습니다. 모호한 실체 때문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이입이 가져온 언어의 유희로 보일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이 단어를 꺼낸 이유는 별거 없습니다. 아침 해를 만나러 온 사람이 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고독이나 외로움은 유명한 철학자만이 점유하는 말인 줄 알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니체, 칸트, 쇼펜하우어가 고독을 통해 철학을 말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창조적 에너지로 승화시켰습니다. 고독을 통해 사색의 심연을 탐험하며, 삶에 꾸준히 질문을 던졌고, 답을 제시해 왔습니다. 그래서 감히, 넘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외로움을 만나서 고독과 함께 지내다 보니, 진정한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밤새 외로움을 견디며 보낸 고독한 아침 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태양은 외로운 밤을 홀로 보내고, 고독이란 침대에서 빠져 나와 나를 만나러 오고 있습니다. 나만의 고독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한 때 외로움이 내게 준 트라우마가 있었습니다. 실체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입은 상처와 좌절입니다. 이후 생긴 마음의 생채기가 외로움이나, 고독이라 여겼습니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고독은 내 영혼이 말하고 싶은 간절한 외침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음에 귀를 대고 그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내가 고요한 이 아침에 고독을 만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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