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꺼내려면 시각적으로 사물의 느낌이 인지되어 뇌에 전달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어둠 속에선 이 말이 의미 없습니다. 단지 사전적 의미일 뿐이고, 무의미한 표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표현이 의미를 지니려면 일단 어둠을 벗어야 합니다. 그걸 벗지 않고서는 알 수 없습니다. 어둠이란 옷을 입고 있는 이상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어둠은 시각이란 감각을 무의미하게 만듭니다.
‘아름답다’라는 말은 시각적인 관점을 전제로 합니다. 눈으로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영역에서만 선택하는 수사적(修辭的) 표현입니다. 대상은 다양합니다. 그중 대표적인 게 꽃이라 생각합니다. ‘꽃’을 떠올리면 연상되는 수식어가 ‘아름답다’라는 형용사입니다. 따라서 ‘꽃이 아름답다’라고 할 때, 제일 먼저 어둠이란 옷을 벗어야 논리적으로 맞는 표현입니다. 사실, 꽃뿐만 아닙니다. ‘아름답다’고 하는 모든 것에 해당합니다.
꽃은 피어야 아름답습니다. 피기 전까지는 아름답다고 할 수 없습니다. 꽃망울이 터트려야 꽃이 제 얼굴을 드러냅니다. 단지 꽃망울을 보고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우린 꽃이 핀다고 말합니다. 누구도 꽃이 옷을 벗는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핀 상태로 꽃을 봐왔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 늘 꽃은 어둠 속에 움츠려 있다가 빛을 만나 꽃망울을 열고 아름다운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여태껏 모든 꽃이 피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벗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는 꽃도 있습니다. 바로 양귀비꽃이 그렇습니다. 벗는다고 하니까 좀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꽃이 피면 폈지, 벗는다고. 뜬금없이 생뚱맞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만합니다. 일반적으로 벗는 꽃은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꽃이 벗는다고 하면 뭔가 입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양귀비 꽃사진을 보면 알 겁니다.
양귀비꽃이 꽃망울을 터트리기 직전 모습이 내겐 마치 옷을 벗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보통의 꽃이 피는 것과 달리 다르게 보여 사진을 몇 장 찍었습니다. 꽃이 피는 모습이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입니다. 찍은 사진을 컴퓨터 화면에 띄우고 유심히 보았습니다. 이게 꽃이 피는 걸까, 벗는 걸까. 일반적으로 꽃망울이 위에서 아래로 열리면서 꽃이 피는데 양귀비꽃은 반대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벗는다는 동사를 가져왔습니다.
“어라, 이건 꽃이 피는 게 아니라 벗는 것 같네.”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얘가 왜 이러지. 너 웃긴다.”
꽃이 말을 알아듣는다면 그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홀연 당 태종이 떠올랐습니다. 당 태종 하면 절세미인 양귀비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혹시 그 시절 양귀비가 당 태종의 침실에서 겉옷과 속옷을 벗고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며 유혹하려는 걸까? 나 혼자 속으로 에로틱한 생각을 해봤습니다.
위의 비유가 적절한지를 논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순간적으로 양귀비가 요염한 표정으로 미소 지으며 옷을 벗는 장면을 연상해 보았을 뿐입니다. 물론 지나친 비약이자 과장이라면 어쩔 수 없습니다. 상상은 어디까지나 자유이니까요. 양귀비꽃이 아니라면 그런 상상을 아예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나 홀로 야한 상상을 해 본 겁니다. 이글의 제목을 ‘벗어야 아름답다’라고 한 여기에 있음을 솔직히 밝힙니다. 하지만, 상상은 거기까지 입니다.
감추고 숨기는 게 많은 세상입니다. 왜 그럴까요. 진실이 드러나면 다치니까. 아니면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오니까. 그게 다 인간이 갖고 있는 탐욕이고, 속물근성입니다. 그래서 벗기 싫은 겁니다. 추한 모습을 감추고 싶은 거죠. 하지만, 그걸 벗어야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모습 아닐까요. 사람이든 꽃이든 아름다움은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추한 것을 언제든 벗어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인간적이고, 아름답습니다. 요즘 세간을 떠들석하게 하는 가수 얼굴이 스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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