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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팬덤(fandom) 시대에 산다

by 훈 작가 2024. 5. 16.

서울에 왔습니다.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낯설지 않은 거리인데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많이 변했기 때문일 겁니다. 5월11일 토요일 오전, 지하철은 생각만큼 혼잡하지 않았습니다. 1호선 종로 3가에서 환승한 후 종로 5가에서 내렸습니다. 요즘 뜨겁다는 광장시장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아주 오래전 딱 한 번 와봤던 곳입니다. 족히 30년은 된 듯합니다.
 
전통시장은 언제나 활기넘칩니다. 여기도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TV 화면에서 많이 봤던 먹자골목에 들어서자, 먼저 특유의 음식 냄새가 코를 자극합니다. 순간 입안에 군침이 돌았습니다. 달라진 풍경이 있다면 외국인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오전 11시가 좀 지났는데도 이 정도라면 오후가 되면 안 봐도 어떨지 짐작이 갑니다.

먼저 찹쌀 꽈배기가 눈에 띄어 하나 샀습니다. 아내는 맛이 끝내 준다며 한 입 먹어보라고 했습니다. 난 괜찮다며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한 바퀴 돌며 눈요기를 한 뒤 길게 줄 서 있는 작은 떡볶이집에 들어갔습니다. 좁은 장소라 서서 먹어야 했습니다. 그곳을 나와 구경하면서 점심 메뉴를 칼국수로 결정했습니다.
 
긴 줄이 서 있는 집은 이유가 있습니다. 다시 줄을 서 기다렸습니다. 외국인이 더 많았습니다. 현장에서 직접 면을 만드는 분들이 한 가족처럼 보였습니다. 보아하니 나이도 좀 들어 보이는 할머니입니다. 주문한 만두 칼국수와 비빔국수가 나왔습니다. 한 입 먹어본 아내는 면발이 어쩜 이리 쫄깃한지 모르겠다며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국물도 그랬습니다.

종로 3가 거리는 연등 행사 준비로 교통을 통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인사동 골목으로 들어섰습니다. 가수 황영웅의 노래 ‘인사동 찻집’ 분위기를 즐기고 싶어서입니다. 그런데 일기예보대로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마땅한 찻집을 찾다가 스타벅스로 갔는데 자리가 없어 종로 3가까지 갔습니다.
 
모처럼 서울에 온 이유는 황영웅 콘서트 때문입니다. 열혈 팬인 아내를 따라 같이 왔습니다. 난 그냥 덤으로 따러 온 것뿐입니다. 아내는 이미 혼자서 첫 공연인 수원과 울산 공연도 다녀왔습니다. 5월 25일(토) 대전공연은 다시 나와 함께 갈 예정입니다. 지난해 아내 덕분에 처음 콘서트라는 걸 현장에서 직접 봤습니다. 감동 그 자체였고, 느낌이 너무 달랐습니다.

9호선 올림픽 역을 나오니 빗줄기가 더 굵어졌습니다. 연초록색 옷차림만 봐도 황영웅 팬클럽(파라다이스) 회원인 것 알 수 있습니다. 공연장으로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년 여성들입니다. 남자가 있긴 했지만 눈에 잘 띄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가을, 처음 가본 콘서트에서도 관람석을 매운 사람들도 중년의 여성들이었습니다.
 
콘서트 막이 오른 시간은 오후 5시입니다. 음악이 나오자, 올림픽 홀은 뜨거운 함성이 울렸습니다. 팬심이 만들어 낸 무대에 주인공 황영웅이 조명 속에 등장하자 말 그대로 환호성이 공연장 전체를 흔들었습니다. 가만히 있는 내가 졸지에 이상한 사람이 된 기분입니다. 난 팬은 아니지만, 그의 노래는 좋아합니다. 노래도 노래지만 그의 목소리는 어느 누구도 따를 가수가 없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행복한 일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이 시대에 팬덤 문화가 자리 잡았습니다. 잘 모르지만, 아이돌 가수가 등장하면서 K-Pop 열풍이 불었고 그러면서 팬덤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동안 이런 팬덤현상은 MZ세대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습니다.
 
어느 날 이런 팬덤현상이 트로트 장르로 번졌습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해진 중년층도 자신을 위한 소비에도 적극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동시에 ‘덕질’에도 뛰어들었습니다. 이른바 ‘엄마·삼촌 팬’ 문화가 만들어진 거죠. 이뿐만 아니라 ‘스밍 총공, ‘조공’, ‘기부 서포트’, ‘굿즈 구매도 MZ세대 팬들에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콘서트는 8시가 조금 넘어 끝났습니다. 왜 이토록 열광할까. 힐-링 받고 싶은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욕구가 팬덤을 만듭니다. 사는 게 힘들고 세상이 따뜻하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린 노래 한 곡으로도 위로받고 마음의 응어리를 풀 수 있는 존재입니다. 아내와 같이 서울까지 와 올림픽홀을 찾은 이유입니다.
 
그런데 여기까지였으면 좋겠습니다. 문제는 내 편이 아니면 미워하고 심하면 편을 가르며 적대시하는 증오심리입니다. 이를 부추기는 정치권 팬덤 현상은 뼈아픈 반성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팬덤정치가 만든 부작용은 권력을 위한 도구로 팬덤을 이용하고 있다는 접입니다. 여기에 매몰되면 우리의 미래는 암울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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