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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하늘이 무심 할까

by 훈 작가 2024. 5. 13.

하늘 볼 때가 있습니다. 울적할 때도 보고, 마음이 허전할 때도 봅니다. 어디가 아파서가 아닙니다. 사는 게 뭔데 이렇게 아등바등하며 살아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 때 순간적으로 우울해지고, 마음 한구석에 쓸쓸한 바람이 휑하니 불어닥칩니다. 혼자 있을 때, 어느 날 지독할 정도로 좋은 하늘을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예전에 한참 마음잡기가 힘들고 어려울 때 답답한 나머지 그냥 하늘만 본 적이 많았습니다. 멍하니 보기만했습니다. 그때 멀리 있던 하늘이 다가왔습니다. 주춤했지만, 그게 싫지 않습니다. 차갑게만 보이던 하늘이 따뜻한 시선으로 날 봅니다. ‘힘들지’ 하며 내마음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무심결에 튀어나오는 말이 ‘참, 하늘도 무심하지.’였습니다.

그랬던 적이 많았습니다. 뭔가 일이 안 풀리고, 답답할 때 하늘이 왜 이리 무심할까, 생각했습니다. 하는 일마다 일이 꼬여 풀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시작한 사업을 접어야만 했고, 방황 끝에 다시 취직한 회사에서도 승진 경쟁에 뒤처져 마음 고생이 심했습니다. 게다가 있는 거 다 까먹고 나니 통장까지 빈 깡통이었습니다.
 
언제 돈 벌어 결혼하나 싶었습니다. 좋은 시절 다 보내고 소주잔 기울이며 신세 한탄 많이 했습니다. '결혼은 내게 사치야',라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축의금 봉투 들고 친구들 결혼식은 체면 때문에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부러웠습니다. 상대적 빈곤이 나를 초라하게 했습니다. 이후 선술집을 찾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본 서울의 밤하늘, 조각달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러려고 한 게 아닌데 핑그르르 눈물이 돌더니 흘러내렸습니다. 나름 열심히 산 것 같은데, 하늘은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거지, 하며 서러운 객지생활의 애환을 쏟아 붓고 싶었습니다. 사실, 하늘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다 내 탓인데, 그땐 시골 촌놈에게 만만치 않았던 서울생활이 힘들어 하늘을 원망했었나 봅니다.
 
흔히 말합니다. 살다 보면 궂은날도 있고, 갠 날도 있는 거라고. 만족하며 사는 이가 몇이나 있겠냐며 하늘을 닮은 듯한 말을 합니다. 인생은 이런 일 저런 일 겪으면서 어른이 되는 거니까 상심하지 말라는 겁니다. 좋은 의미의 말이지만 그런 말이 당시는 내마음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내 사정도 모르면서 그냥 립서비스 하고 싶어서 그런거라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하늘을 탓할 일이 없습니다. 무심하다고 할 일도 없습니다. 이젠 하늘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있다면 사진을 찍으러 나갈 때입니다.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좋은 날씨만 바랄 뿐입니다. 원하는 날씨가 아니라도 하늘의 뜻이려니 하고 마음에 새기는 일이 더 많습니다. 삶은 하늘에 순응하는 거라는 걸 오래 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살면서 하늘을 보는 때가 얼마나 될까. 생각보다 많지 않았던것 같습니다. 오늘도 보려고 본 하늘이 아닙니다. 그냥 시선이 닿았습니다. 새벽하늘을 궤적을 그으며 날아가는 비행기가 눈에 보였습니다. 그 옆에 초승달도 있습니다. 비행기가 지나가는 것처럼 세월도 언제 그렇게 가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월의 속도는 나이에 비례한 말이 맞는 듯싶습니다.

일반적으로 하늘이 보고 싶을 때가 있긴 있습니다. 여름철 지루한 장마가 길게 이어질 때입니다. 그런 때가 아니고서는 별로 없을 겁니다. 나는 하늘이 좋은 날만 사진을 찍으러 갑니다. 이 때문에 사진을 찍는 날이면 좋은 하늘을 보게 됩니다. 그런 하늘을 볼 때마다 가끔은 옛 생각이 스칩니다. 하지만 그때처럼 하늘이 무심하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종종 하늘이 무심하다는 말이 들립니다. 어떤 때냐 하면 날씨가 안 좋을 때입니다. 특히, 기후변화에 따른 날씨가 재난 상황에 이르게 할 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합니다. 하지만, 하늘이 무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내가 하늘이 무심하다고 생각했을 때, 사실 하늘은 나와 무관했듯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무심한 건 우리 인간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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