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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눈물 없이 피는 꽃은 없다.

by 훈 작가 2024. 6. 6.

같은 봄비라도 유난히 다를 때가 있습니다. 한여름 장맛비처럼 요란하게 내릴 때입니다. 그럴 때 날씨가 도대체 왜 이렇지? 하고 하늘을 쳐다보게 됩니다. 빗방울이 “따다닥” 소리를 내며 우산을 때립니다. 그 소리가 교향악단 작은북을 두드리는 소리같습니다. 봄을 재촉했던 비와는 전혀 다른 봄비입니다.
 
양귀비꽃이 한창인 카페 주차장 앞 청보리가 비바람에 힘겨워하더니 누워 버렸습니다. 청보리도 깜짝 놀라 기절한 모양입니다. 안간힘을 쓰며 버티다가 안쓰럽게 쓰러진겁니다. 사는 게 만만치 않다는 건 사람이나 청보리나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보리밭 한쪽에 핀 양귀비꽃도 덩달아 바람을 안고 넘어져 있습니다.
 
비에 젖은 청보리와 꽃들을 보니 마음이 안 좋습니다. 따뜻한 햇살만 즐기다가 갑자기 불어닥친 비바람에 끝내 눈물을 보인 듯 표정이 말이 아닙니다. 밝았던 얼굴이 사라지고 꽃다운 아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는 표정이 안타갑게 보입니다. 그래도 꽃으로서 자존심을 지키고 싶은 모양입니다.

살다 보면 시련이 있기 마련입니다. 꽃의 삶이라도 항상 아름다울 수만은 없습니다. 고통의 시간은 언제나 괴롭습니다. 어여쁜 꽃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을 겁니다. 자연은 혹독한 시련을 견뎌낸 꽃에게만 아름다운 향기를 선물 주는 것 같습니다. 비바람을 견뎌내지 못한 꽃은 제대로 피우지 못하고 사라지는 게 자연의 이치입니다.
 
서양에서는 시집가는 딸에게 엄마가 진주를 주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그 진주를 '얼어붙은 눈물'(Frozen Tears)이라 한다고 합니다. 결혼한 딸이 속상할 때 조개가 자기 몸속으로 들어온 모래 때문에 받는 고통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보석이 되듯이 잘 견디어 내라는 의미로 챙겨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래 알갱이가 다 진주가 되는 것은 아니랍니다. 까칠까칠한 모래알이 조개 몸속에 박히게 되면 조개는 본능적으로 둘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만 된다고 합니다. 첫 번째 선택은 모래알을 무시해 버리는 건데, 그렇게 하면 조개가 모래알 때문에 병들어 살이 썩기 시작해 모래알 때문에 죽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두 번째 선택은 모래 알갱이가 몸속을 파고드는 고통을 이겨내는 겁니다. 이때 조개는 ‘나카(nacre)’라는 액을 분비해 모래 입자로 인한 상처를 감싸 모든 이물질을 녹여버리고 상처를 치료합니다. 이렇게 아주 오랜 세월 반복해서 만들어진 게 진주입니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요? 누구든 죽음을 선택하고 싶지 않을 겁니다.
 
비바람은 시련입니다. 고통스러워하는 꽃들, 눈물을 보입니다. 이 밤이 지나면 비는 그칠 겁니다. 꽃들은 밤새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릴 겁니다. 꽃이 선택해야 하는 길도 두 가지일 겁니다. 조개처럼 비바람에 쓰러져 꽃이란 이름을 버리고 사라질 것인지, 아니면 비바람을 견디고 향기 나는 꽃으로 활짝 필 것인지.
 
눈물 없이 피는 꽃은 없습니다. 인생도 같습니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모래 알갱이가 내 안에 들어올 수도 있고, 때론 폭풍우가 몰아칠 때도 있습니다. 이겨내야합니다. 눈물을 진주로 바꾸는 과정은 고통입니다. 꽃이 향기가 그윽한 것은 그걸 견뎌냈기 때문입니다. 세상엔 눈물없이 피는 꽃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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