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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아포리즘

원두막이 있는 풍경

by 훈 작가 2024. 6. 5.

 
 

이게 무슨 말이지?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원두막이란 말이 생소하게 들린다면 MZ세대일 겁니다. 하지만, 정겹게 느껴진다면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 아날로그 시대를 산 사람일 겁니다. 꼭 그런 추억이 아니라도 악동(惡童) 시절 서리를 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도 원두막 하면 입가에 미소를 지을 겁니다. 하지만 MZ세대라면 ‘서리’라는 말도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원두막은 수박이나 참외 따위를 심은 밭을 지키기 위하여 밭머리에 높게 지어놓은 막입니다. 일종의 경계초소인 셈입니다. 서리는 가을에 수증기가 얼어 땅에 내리는 걸 말하기도 하지만, 떼를 지어서 주인 몰래 남의 과수원의 과일(수박이나 참외) 따위를 훔쳐 먹는 장난질을 뜻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비닐하우스에서 대부분 여름철 과일을 재배하니 원두막이나 서리 같은 말이 일상에서는 사라진 듯합니다.
 
아날로그 시대 ‘원두막’은 여름철에나 볼 수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참외나 수박이 익어 갈 무렵이면 원두막을 지키는 어른들이 생각납니다. 원두(園頭)라는 말은 참외, 오이, 수박, 호박 따위 열매채소를 이르는 말이라 합니다. 원두막은 낮에는 이웃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피서처도 되고, 때론 과일을 사 가려는 상인과 흥정하는 장소가 됩니다. 그러나 밤이면 다시 과일을 지키는 초소가 됩니다.

노랗게 물든 유채꽃밭에 원두막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시절 원두막같은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무늬만 원두막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운치 있어 보입니다. 오래전 원두막 풍경이 뇌리에 스칩니다. 동네 친구들과 몰래 참외밭에 들어가 서리하던 추억도 생각납니다. 그러다 주인 할아버지한테 들통나 도망쳤던 기억이 흑백영화처럼 지나갑니다. 지금 같았으면 경찰서에 잡혀가 콩밥 먹을 신세를 면치 못할 일겁니다.
 
경계초소이자 망루 같았던 원두막. 지금은 그런 원두막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사진 속 유채꽃밭 원두막은 휴식 공간이자 힐-링 쉼터 같아 보입니다. 고즈넉한 노란 유채꽃밭의 풍경을 즐기는 낭만적인 공간 같기도 합니다. 꽃이 피어 있는 동안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그곳에 앉아 유채꽃을 바라보며 꽃멍 때리기라도 하면 답답하고 꽉 막혔던 스트레스가 날아갈 것만 같습니다.
 
인류는 디지털 시대를 지나 인공지능(AI)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디지털 문명이 아날로그 문명을 지우기 시작한 것처럼 인공지능(AI) 시대도 자고 일어나면 무언가 또 지워버릴 겁니다.  아날로그 시대 추억이었던 원두막이 지웠듯이 디지털 시대의 무언가가 지금 이순간에도 지워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사진 속의  원두막 풍경이 먼 옛날의 추억이 된 것처럼 말입니다. 홀연 사라지는 것들이 그리워지는 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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