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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행복, 그대와 춤을

흔들리며 산다

by 훈 작가 2024. 6. 17.

“삐-삐-삐~”
 
긴급재난 문자 소리와 함께 거실 소파가 흔들리는 게 느껴졌습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전율이 짜릿하게 온몸에 퍼졌습니다. 그 시각이 오전 8시 35분이었습니다. 잠시뒤 TV 화면을 보니 자막에 속보가 전해졌고, 12일 오전 8시 26분 49초 전북 부안 남남서쪽 4㎞ 지점에서 규모 4.8 지진이 발생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날 저녁뉴스에 진앙은 전북 부안군 행안면 진동리로 진원의 깊이는 8㎞로 추정된다고 했습니다. 이번 지진은 올해 한반도와 주변 해역에서 발생한 지진 중 규모가 가장 크고, 내륙에서 규모 4.5 이상 지진이 발생한 것은 2018년 2월 11일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4.6 지진이후 66년여 만이라고 합니다.
 
놀라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겁니다. 가슴을 쓸어내렸던 공포가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그순간 너무 무서웠습니다. 아파트가 무너지면 어쩌지, 하는 생각까지 했으니까요. 자연의 일시적인 현상이 이렇게 짧은 시간에 내 삶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살면서 흔들린 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내적인 갈등이었습니다. 추상적인 표현이지만,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 없을 겁니다. 다만, 이번 지진처럼 공포감을 느끼는 흔들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흔들린다는 표현만 놓고 보면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흔들림의 주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차원이 다릅니다.
 
되돌아보면 나를 흔들었던 게 참 많습니다. 학교 다닐 땐 항상 시험 점수가 내 마음을 흔들었고, 한때는 사랑이 날 흔들었습니다. 그러다 연애를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결혼하기 전까지는 내 집 마련의 꿈 때문에 흔들렸습니다. 나이 40이 넘어 그 꿈을 이루고 결혼했으나 또 삶의 행복이 뭔지 흔들렸습니다.
 
나를 흔들게 만든 것이 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릴 적엔 욕심, 청춘의 나이에 접을 들었을 땐 사랑, 직장에 다닐 땐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꿈이 나를 흔들었습니다. 그 꿈속엔 사랑도 있고, 돈도 있고, 이런저런 욕망이 있었습니다. 그것들이 줄기차게 나를 흔들었습니다. 그렇게 난 흔들리며 살았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인생은 없을 겁니다. 제각기 다른 삶을 사는 것 같지만 그 삶을 흔드는 것은 비슷할 겁니다. 삶을 흔드는 것은 대부분 욕망에서 파생됩니다. 좋은 말로 하면 행복한 삶을 위해 흔들립니다. 거기엔 권력이 있고, 돈이 있고, 명예가 있습니다. 이걸 다 갖고 싶은 욕망 때문에 흔들리는 겁니다.
 
인간은 숙명적으로 죽을 때까지 흔들리며 살아야 할 겁니다. 매 순간 생각하고, 선택하면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흔들리는 삶을 사는 겁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깨닫고 배우며 사는 게 인생입니다. 흔들리면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행복해지는 것을 알게 되는 게 삶입니다. 어찌 보면 흔들리지 않은 삶은 이 세상에 없다고 보아할 겁니다.
 
출사지에 오니 형형색색의 꽃이 아름답습니다. 꽃도 사람의 삶처럼 흔들리지 않는 꽃이 없을겁니다. 다만 평소엔 흔들리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 때만 흔들립니다. 바람에 물결처럼 흔들리는 꽃을 찍으려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끝내 불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렌즈 초점을 맞추지 않은 채 셔터를 누르면서 카메라를 의도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사진을 보니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흔들린 것 같습니다. 영겁의 세월을 살아온 지구도 누군가에 의해 흔들릴 때가 있는 모양입니다. 삶이 흔들릴 땐 누가 붙잡아 주거나 스스로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내 삶이 흔들릴 땐 내가 나를 잡아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흔들리는 지구는 누가 잡아주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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