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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행복, 그대와 춤을

연등 하나쯤…

by 훈 작가 2024. 5. 21.

산사의 밤은 정적 속에 어둠이 스며듭니다. 하늘빛은 어둠과 섞여 에메랄드빛으로 변했습니다. 그것도 잠시 빛이 사라진 공간에 반짝이는 별빛이 도심의 하늘과는 전혀 다른 아름다움을 연출합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별빛입니다. 밤의 서정과 낭만을 상징하는 별빛, 감성 세포를 자극합니다. 갑자기 시인이 된 것처럼 별빛에 빠져들고 싶은 밤입니다. 누구라도 쏟아지는 별빛을 보면 그럴 거란 생각을 해 봅니다.
 
밤에 속리산 법주사를 찾은 이유는 하나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 연등 사진을 찍고 싶어서입니다. 일부러 밤에 왔습니다. 어둠 속에서 찍어야 연등이 돋보일 것이고 아름다운 사진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낮과 달리 밤이 되면 다양한 색상의 연등이 마치 유치원 재롱잔치 때 아이들이 입는 예쁜 색동저고리처럼 아름답습합니다. 어둠이 자연스럽게 까만 바탕화면처럼 배경이 되어 주기 때문에 훨씬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연등은 그냥 보면 꽃 모양을 연상케 하는 등입니다. 언듯 보기엔 연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관련이 없습니다. 흔히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처럼. 감정적이 뉘앙스 차이가 아닙니다. 자칫 아무것도 모르고 연꽃과 과련이 있는 것처럼  말하면 무식하단 소릴 듣기 딱 맞습니다. 연등(蓮燈)으로 생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연등의 연은 연꽃 연 (蓮) 자를 쓰지 않습니다.  '불탈 연(燃)' 자를 씁니다. 그래서 연등(蓮燈)아니라 연등(燃燈)입니다.
 
한때 부처님오신날 연등(燃燈)을 연등(蓮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연등(蓮燈)은 분명 잘못된 표현입니다.  착각하기 쉽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많을 지도 모릅니다. 우리말이 어려운 것은 이런 것 때문일 겁니다. 등 모양이 연꽃이다 보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연등(燃燈)은 지혜를 상징하는데 불탈 연(燃)의 의미는  스스로 불태워 어둠을 밝히는 빛을 뜻한다고 합니다. 

스스로 묵묵히 자신을 태우며 어둠을 밝히는 등불처럼, 세상을 밝게하고자 하는 부처님의 진리이자 가르침이 연등의 불빛에 있는 겁니다. 이는 곧 붓다가 깨달음을 통해 얻은 자비의 빛이자 진리의 빛을 의미하며, 나아가 속세 중생의 관념 속에 있는 신이라는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와 존엄을 찾는 빛을 상징합니다. 신을 넘어선 최고 존엄의 인간, 이것이 바로 진리를 통해 진정한 인간이 되는 길이며,  부처님되는 겁니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너무 어둡습니다. 길게 뻗은 전조등 빛이 한적한 산길을 밝혀 줍니다. 전조등 빛이 지금 순간은 유일한 연등(燃燈)이 되어 줍니다. 그 빛처럼 내 안의 어두운 곳을 밝혀 주는 연등(燃燈) 하나를 켜 놓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속세의 삶에서 어둠의 유혹에 흔들릴 때마다 나를 밝혀 주는 그런 연등(燃燈) 말입니다. 속세를 떠나 출가하지 않는 이상 부처가 되긴 어려울지라도 내 마음을 밝게 해주는 연등 하나쯤은 갖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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