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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행복, 그대와 춤을

꽃길은 둘이 걸으세요.

by 훈 작가 2024. 4. 17.

봄이면 걷고 싶은 길이 있습니다. 벚꽃길입니다. 이름난 곳은 봄나들이에 나선 사람들로 붐빕니다. 봄의 정취를 만끽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봄이 연출하는 아름다운 향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벚꽃 시즌이면 봄축제가 여러 곳에서 열립니다. 봄의 낭만은 벚꽃과 함께 막이 오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겁니다. 해마다 그랬듯이 올 봄 벚꽃길도 나들이객들로 북적일 겁니다.

호젓한 벚꽃길을 혼자 걸어 본 적이 있습니다,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사람이 붐비는 시간을 피해야 합니다. 마음에 정해 둔 출사 장소에 이른 아침 일찍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빛이 좋은 시간에 맞추어 마음껏 사진을 담은 후 걸어 봤습니다. 그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봄의 향연을 독차지한 것 같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혼자 걷다 보면 상념에 빠져듭니다. 아름다운 분위기와 달리 이런저런 생각이 봄바람에 스치듯 마음속을 날아다닙니다. 아무도 없으니, 나만의 사색의 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때론 추억의 강을 만나고, 그 강을 따라가다 보면 과거로 떠나는 시간여행이 되면 지난날 추억같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릅니다.

추억의 장면을 클릭해 봅니다. 부엌과 장독대를 드나들던 엄마, 막걸리를 좋아하시던 아버지, 고향 집 돌담길 아래 핀 작약꽃, 마을 언덕배기, 어릴 적 친구, 소풍 가던 날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릅니다. 정감 어린 장면만 있진 않습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도 있습니다. 병실에 누워있던 고3 시절, 사랑의 어두운 그림자, 수많은 방황 그리고  선술집 쓴 소주잔....

아지랑이 속 상념이 남긴 과거를 지나면 다시 시간 열차는 미래로 갑니다. 아련해 보이는 무명작가의 꿈. 아프리카와 남미 여행. 나머지 버킷리스트…. 막연한 상상은 벚꽃길의 분위기 낭만을 빼앗아 갑니다. 어찌 보면 벚꽃 길의 정취를 무색하게 만듭니다. 나를 반기는 벚꽃 요정들에게 본의 아니게 실례를 범하게 됩니다. 

꽃길을 혼자 걸으면 대개 과거의 조각들이 생각납니다. 에둘러 이를 지워버리면 다시 미래가 다가옵니다. 이상하게 현재는 없습니다. 아니, 있기는 하지만 생각나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사색과 산책이라면 그리 나쁠 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벚꽃길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벚꽃길 풍경을 사진에 담다 보면 혼자 걷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둘이거나 그 이상입니다.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습니다. 대화의 내용이 뭔지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표정이 밝습니다. 당연히 혼자 걷는 것과 달리 상념에 젖을 이유가 없습니다. 대화는 생각을 나누는 것이고, 그 생각은 현재 시점에서 출발합니다. 과거나 미래에 얽매이는 주제가 많지 않다는 뜻입니다.

꽃길은 둘이 걷는 게 좋습니다. 꽃이 주는 기쁨과 행복을 혼자서 즐기는 게 나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기회가 되면 혼자서도 걸어보고, 그리고 둘이 걸어 보시기 바랍니다. 실제로 걸어 보고 나면 공감할 겁니다. 꽃길을 걷는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누구나 걷고 싶은 길입니다. 그 길을 혼자 걷는 건 반쪽의 낭만일 뿐입니다. 둘이 걸으면 더 로맨틱합니다. 행복은 더 커지고, 나눌수록 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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