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멀면

오래전 일입니다. 어느 날 눈에 뭔가 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불편했습니다. 약국에서 안약을 사 며칠 넣어 보았지만, 증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일상생활에 크게 불편하지 않아 그냥 참고 지냈습니다. 그런가 싶더니 마치 유리창에 안개가 낀 것 같이 약간 뿌옇게 보이는 느낌이 들어서 거울을 보며 자세히 눈동자를 보았습니다. 아무리 거울 가까이 봐도 눈이 이상한 것 같지 않았습니다.
 
망설임 끝에 이튿날 안과를 찾았습니다. 진찰 결과 뜻밖에 백내장 초기 증상이라는 의사의 말에 놀랐습니다. 어차피 나이가 들면 오는 눈의 노화현상이라는 겁니다. 해법은 수술 이외 다른 방법은 없다는 말에 걱정이 되었습니다. ‘수술’이란 말은 더 이상 떠올리기 싫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고2~3년 때 두 번이나 외과수술을 받은 탓입니다. 병원을 나오면서 은근히 마음을 짓누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대로 방치하면 녹내장으로 진행되어 시력을 잃을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겁이 났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의술이 발달로 수술은 통증 없이 한 시간이면 끝난다고 했고, 바로 일상생활을 하는 데 지장 없다고 해서 다음 날 일정을 잡고 바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눈이 더 나빠지기 전에 빨리 서두르는 게 낫다 싶었던 겁니다. 그리고 한 달 뒤 오른쪽 눈도 받았습니다.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 것은 질병이나 노화만은 아닐 겁니다. 의미는 다르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눈을 하는 게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사랑과 돈입니다. 사춘기 때 얼굴이 예쁜 여학생에 눈이 먼 적도 있고, 이성에 눈뜬 다음엔 사랑에 눈이 멀어 홍역을 앓듯이 잠 못 이룬 적도 있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내 집 마련의 꿈 때문에 돈에 눈이 멀어 쓸 거 아껴가면서 돈 모으느라 아등바등하며 생활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사랑에 눈이 멀어지는 것에 빗대어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는 말입니다.  사랑에 빠지면 정말 눈이 멀게 되는 건 아니지만, 그만큼 좋은 것만 눈에 들어온다는 뜻일 겁니다. 이성간에 사랑에 빠지면 눈이 멀 정도로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실제로 사랑하는 연인에게 매력을 느끼게 되면 거의 모든 면을 긍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고, 과대평가한다고 합니다. 나쁜점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한 마리로 이상형으로 받아드리는겁니다.
 
그럼, 돈에 눈이 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부모도 형제도 자매도 없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눈에 보이는 게 없습니다. 오로지 보이는 거라고는 돈밖에 안 보이는 겁니다. 이성적인 판단이 흐려져 피도 눈물도 없게 되는 지경에 이르니 눈이 멀어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시쳇말로 미쳐도 단단히 미친 사람이 되는 겁니다. TV 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하는 주제이고, 재벌가 형제간의 갈등도 가끔 뉴스에 등장하곤 합니다.

벌 한 마리가 핑크빛 사랑에 빠진 듯 분홍색 꽃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는데도 꼼짝달싹 하지 않습니다. 사랑에 푹 빠져 눈이 먼 모양입니다. 사람도 그렇듯 벌도 사랑에 빠지면 별반 차이가 없나 봅니다. 다른 한쪽에선 노란 꽃에 벌이 앉아 있습니다. 마치 노란색이 금(Gold)을 상징하는 듯 보여 같이 찍었습니다. 한 녀석은 사랑에, 또 한 녀석은 돈에 눈이 먼 것 같아 흥미롭게 보였습니다.
 
사랑이나 돈에 눈이 멀게 되면 이성적인 판단이 흐려집니다. 올바른 판단을 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사랑에 눈이 멀면, 사랑의 노예가 되고, 돈에 눈이 멀면, 돈의 노예가 됩니다. 사랑이나 돈의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한쪽 눈만은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눈을 떠야 합니다. 두 눈 다 멀면 답이 없습니다. 세상은 감정보다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현실과 이상은 같을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