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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동유럽

‘세체니 다리’를 바라보며

by 훈 작가 2024. 6. 28.

한강은 서울을 가로질러 흐른다. 강북과 강남 사이를 갈라놓은 건 유감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서울은 강남과 강북을 모두 아우른다. 서울은 강남 따로 강북 따로가 아니다. 오래전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는 달랐다. 도나우강을 중심으로 ‘부다’와 ‘페스트’로 나누어져 있었다. 마치 연인 같은 ‘너’와 ‘나’ 사이를 갈라놓은 게 강이나 다름없었다.
 
‘부다’와 ‘페스트’가 연인처럼 하나가 된 계기를 만든 건 다리다. ‘너’와‘나’를 이어주는 다리가 만들어지면서 ‘부다'와'페스트’는 하나가 되었다. 그게 ‘세체니 다리’다. 다리는 강이나 하천이 흐르는 양쪽 지역을 이어주는 구조물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야경이 아름다운 도시'부다페스트'는 세체니 다리가 중매쟁이 역할을 한 셈이다.
 
도나우강은 독일 슈바르츠발트 삼림지대에서 시작해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헝가리, 세르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러시아 등을 거쳐 흑해로 흐른다. 유럽 대륙의 남동부 약 2,850㎞를 흐르는 강이다. 독일어로 도나우’, 영어로 다뉴브’, 헝가리어로 두나라고 부른다. 이 강을 사이에 두고 강을 사이에 두고 서쪽이 ‘Buda’, 동쪽이 ‘pest’였다.

세체니 다리는 부다와 페스트를 연결하는 최초의 다리다. 도나우강에 있는 다리 중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꼽히며, 1839년에 착공해 10년 만에 완공되었다. 이 다리는 헝가리의 발전에 크게 공헌한 ‘세체니 백작’이 영국인 건축가 '애덤 클라크'에 의뢰하여 놓은 다리다. 그런데 가이드에 따르면 다리에 얽힌 비화가 있다고 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세체니 백작’이 부친상을 당하여 ‘부다’에서 강을 건너려고 하는데 갑자기 불어난 강물로 인해 건널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고 무려 8일 동안이나. 그렇게 애를 태우다가 결국 자신의 아버지 장례식을 치르지 못한 불효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백작은 이것이 한이 되었던 모양이다. 훗날 그는 자신이 모은 재산으로 이 다리를 놓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헝가리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로부터 독립 전쟁을 하고 있던 시기라 다리를 놓는 데 이런저런 방해를 많이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헝가리의 의지와 발전의 상징으로 세워졌다고도 한다.

이곳 사람에게 이 다리를 완성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영국의 토목공학자 ‘아담 클라크’라고 한다. 다리 입구의 광장이 ‘클라크 아담 테르 광장’으로 지금까지 그가 찬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세체니 다리’라고 불리게 된 이유는 다리 건설을 구상하고 추진한 인물이 '이슈트반 세체니(1791-1860)'라는 정치가였기 때문이라고 가이드는 말했다.
 
세체니는 도나우강 경제권과 “부다”와 “페스트” 지역의 경제와 문화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강의 양안을 잇는 다리 건설공사를 계획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당시 산업혁명으로 앞서가던 영국의 기술을 과감하게 도입했다. 다리가 완공됨으로써 “부다”와 “페스트”가 통합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 1873년에 ‘부다페스트’라는 이름의 도시가 탄생했다.
 
다리 옆에 사자상이 있다. 이를 조각한 작가는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고 한다. 완벽한 작품 흠이 있다면 자신은 바로 이 다리에서 뛰어내리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아이가 부모에게 왜 사자의 혀가 없냐고 묻는 것을 듣고 나서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강에 투신했다고 한다.

이후 사자의 혀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러 오는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세체니 다리’는 헝가리뿐만 아니라 유럽 다른 나라에서도 명성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다리 길이 380m, 폭 15.7m다. 세체니 다리는 매일 밤 5,000여 개의 전구들이 어우러져 더욱 아름답다. 이와 더불어 부다페스트 야경은 늦은 밤까지 인기가 많다.
 
우리에게도 스토리와  낭만이 있는 그런 다리가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해 보니 있긴 하다. 춘향과 이 도령의 로맨스가 시작된 남원 광한루에 있는 오작교다. 그러나 생각만큼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은 아니다. 파리의 미라보 다리, 런던의 타워브리지, 프라하의 카를교,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 같은 그런 다리는 아니라는 뜻이다.
 
다리는 너와 나를 이어준다. 그런데 있어도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다리가 있다. 남과 북을 이어주어야 하는 민족의 다리다. 너와 내가 만날 수 있도록 오고 갈 수 있는 다리여야 하는데, 분단의 세월이 만든 민족의  다리는 오늘도 정적만 맴돌며 총구를 겨누고 있다. 지긋지긋한 비극의 역사가 언제쯤 막을 내리려나. 가슴이 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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