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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동유럽

연인 도시 '류블랴나'

by 훈 작가 2024. 8. 28.

이미지 출처 : pixabay

빗줄기가 가늘게 몸매를 가다듬고 내린다. 아무래도 그칠 것 같은 비가 아니다. 걱정이 밀려온다. 사진 때문이다. 비야 맞으면 그만이지만 디지털카메라는 컴퓨터 같은 전자장비나 다름없어 아무리 방수가 완벽하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다. 그런 걱정이 밀려오는 가운데 슬로베니아 수도 류블랴나에 도착했다. 망설이다가 카메라를 버스에 두고 내렸다.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나저나 더 이상 빗줄기가 굵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버스에서 내려 중심가 뒤쪽의 아파트단지로 보이는 이면 도로에 내려 걷기 시작했다. 일행은 다시 수신기를 꺼내 귀에 꽂은 채 인솔자 뒤를 따랐다. 류블랴나는 류블랴니차강을 중심으로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구분하는데 신시가지는 용의 다리를 건너 프레셰렌 광장을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진다. 시내 투어는 이 광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용의 다리부터 인솔자의 설명이 수신기를 타고 들리기 시작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 다리는 원래 1901년 목조 다리로 건설되었던 것을 다시 세워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건설 당시 황제였던 프란츠 요제프의 이름을 붙여 프란츠 요제프 다리로 불릴 뻔했다. 하지만 용이 류블랴나의 상징인 만큼 용(龍) 조각상 덕분에 용의 다리로 불리게 되었다. 다리 양쪽 귀퉁이에 용이 한 마리씩 세워져 있다. 이 조각상은 류블랴나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많이 등장한다.
 
용이 류블랴나의 상징이 된 것은 류블랴나가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이아손에 의해 세워진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왕자였던 이아손은 황금 깃털을 찾아 바다를 항해하다 흑해 지방에서 황금 깃털을 발견해 지금의 류블랴나에 도착한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 살고 있던 용을 물리쳤다고 한다.

스마트 폰으로 찍은 사진

용의 다리를 건너 류블랴나 차 강변 쪽으로 내려갔다. 푸줏간 다리(Butchers Bridge)에서 멈췄다. 예전에 이곳 중앙시장에 모여 있던 정육점들이 있던 장소에 다리가 놓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투어 때 건넜던 마크르트(Makartsteg)마크르트(Makartsteg) 다리를 연상케 했다.. 난간에 자물쇠가 빽빽하게 걸려 있는 모습 때문이다. 인도가 투명한 유리 바닥으로 되어 있는 게 특이하다.
 
류블랴나 연인들 사이에서는 난간에 자물쇠를 걸면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어 갈수록 자물쇠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다리 입구에는 인간에게 불의 사용을 알려준 죄로 벌을 받아 육체의 장기가 해체된 처참한 모습의 프로메테우스 동상이 서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주신(主神) 제우스가 감추어 둔 불을 훔쳐 인간에게 내줌으로써 인간에게 맨 처음 문명을 가르친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불을 도둑맞은 제우스는 복수를 결심하고, 판도라(Pandora)라는 여성을 만들어 프로메테우스에게 보낸다. 이때 동생 에피메테우스는 형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아내로 삼았고, 이 때문에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게 되어 인류의 불행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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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류블랴나 시내의 풍경을 회색의 도시로 만들고 있다. 도시의 화려함이 사라진 모습이다. 따뜻한 햇살이 있었더라면 한결 부드럽고 다양한 색상이 어울려 멋이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강변을 따라 늘어선 노천카페도 비가 오는 탓에 손님이 없다. 도심의 활기찬 모습이 보이지 않아 이상할 정도였다. 그 거리를 우리가 주인 인양 울긋불긋한 우산을 들고 줄지어 걷고 있다.
 
광장 한쪽에 동상도 보였다. 다시 인솔자를 중심으로 모였다. 프레셰렌 광장이다. 슬로베니아어로는 프레세레노프 광장(Prešernov trg)이라고 하는데, 류블랴나의 중심이며 만남의 장소, 각종 축제, 류블랴나 카니발, 콘서트, 스포츠 경기, 정치 집회 등이 이곳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가장 번화하고 활기찬 장소로 주위에 많은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어 항상 사람들로 붐비는 장소라고 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여름철에는 이곳에서 다양한 공연이 많이 열린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유럽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이름이 광장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넓지는 않다. 다만 광장바닥이나 도로 바닥을 전부 돌로 깔아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광장의 이름은 슬로베니아의 독립운동가이자 국민 시인인 프란체 프레셰렌(France Preseren/1800~1849)'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그는 슬로베니아가 나은 대표적 낭만파 시인으로 슬로베니아의 언어와 문학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의 사망일인 2월 8일은 문화기념일로 슬로베니아의 12개 국경일 중 하나라고 한다. 이날은 전 국민이 일터에서 벗어나 책을 읽고 시를 읽을 수 있도록 슬로베니아 전역에서 온종일 시 낭송회나 콘서트, 연극 공연 등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열린다. 특히 프레셰렌의 시() “축배는 슬로베니아가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슬로베니아가 독립하여 와인을 마시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썼다고 한다. 현재 이 시는 슬로베니아의 국가로도 사용되고 있는데 그의 시에 "스탠코프렘”이 작곡하여 붙였으며, 1989년 9월 27일 슬로베니아 국가로 제정되었다.
 
제일 눈에 띄는 성당 프란체스카 성당이다. 성당은 류블랴나의 수태고지 교구 성당으로 1646년부터 1660년에 걸쳐 축조되었으며, 같은 자리에 있던 오래된 교회를 대신해 세워졌다. 분홍색 바로크 양식 외관에 아르누보 장식을 한 파사드는 1703년~1706년에 건축한 것으로 현재의 건물은 1895년대 지진 후 리모델링한 것이라고 한다. 1층은 이오니아식 기둥으로, 2층은 코린트식 기둥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지붕 꼭대기에 있는 동상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이다. 2008년 들어 이 성당은 슬로베니아의 문화기념물로 지정되어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다. 다른 성당과는 달리 분홍색이 특이하다. 지금껏 보았던 다른 성당들은 사암이나 대리석 같은 돌로 건축이 되었고 대부분 웅장하며 그 도시의 랜드마크처럼 제일 높은 건축물이었다. 그런 점에서 많이 달라 보였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인솔자가 버스 안에서 드라마에 대해 언급했다. 고현정과 조인성이 주연으로 출연했다는 드라마인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며 말을 이었다. 그들이 촬영한 장면이 류블랴나라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말했다.

“디어 마이 프렌즈”
 
맞다. tvN에서 방영했던 드라마인데 촬영 장소가 바로 프란체스카 성당이란다. 바로 이 성당에서 결혼하자는 조인성을 만나려고 고현정이 류블랴나 차 강변을 따라 뛰어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조인성이 트리플 브리지(Triple Bridge)를 건너서 광장으로 들어오는 순간 고현정이 보는 눈앞에서 조인성이 트럭에 부딪히는 교통사고를 당하는 장면을 이곳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난 드라마에 관심이 없어서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하지만 드라마를 촬영할 정도면 뭔가 그럴듯한 이야기가 있을 법했다. 바로 그 순간 인솔자가 부연 설명을 이어갔다. 프란체스카 성당에서 오후 18:00 시 정각에 사랑을 고백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그가 우리 일행을 보면서 목에 힘을 주듯 말했다. 이곳이 그만큼 낭만적인 장소란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광장을 떠나 Triple Bridge로 이동했다. 류블랴나를 역사적, 중세적, 현대적으로 잇는 다리다. 원래는 1280년 문헌에 의하면 오래된 목조 다리였으나 1842년 9월 25일에 이곳에 낡은 다리를 대체할 새로운 다리가 놓이게 되고 그 당시 이탈리아 조각가 지오반니 피코(Giovanni Picco)의 설계로 석조다리로 건설하였다. 이 다리의 특징은 세 개의 다리가 연달아 삐뚤삐뚤 놓여 있다는 점이다.
 
잘못 만든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비대칭의 미학이라고 할까, 묘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다리 이름을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칼 대공을 기리기 위해 프란츠 다리(Frančev most)라 지었는데, 그게 바로 세 개의 다리 중 가운데 있는 가장 큰 다리이다. 당시 이 다리는 두 개의 아치 교각이 다리를 떠받들고 있었으며 점점 교통량이 증가하며 병목현상이 일어나자 결국 새로운 다리를 건설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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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ple Bridge를 건너 시청사로 갔다. 시청사 시계탑을 보니 12:08분 30초를 막 지나고 있다. 건물 아래 슬로베니아 국기와 시를 상징하는 것 같은 깃발이 걸려 있다. 광장이라고 보기에는 좁다. 그냥 넓은 공터 정도의 공간이고 그곳에 분수대도 보였다. 비가 내리는 그 공간에는 덩그러니 점령군처럼 진을 치듯이 우산을 쓴 우리 일행만 수신기를 통해 인솔자의 설명을 진지하게 듣고 있다.
 
갑자기 빗줄기가 굵어졌다. 때마침 근처에 있는 기념품 가게로 들어갔다. 안에는 손님으로 붐볐다. 비를 피할 겸해서 매장 안으로 들어온 여행객 때문에 가게 안은 더 혼잡했다. 시간도 보내고 기념품을 구경도 하며 둘러보았다. 앙증스러운 기념품이 많았다. 그런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빨간색 지붕의 집 모양의 기념품이 마음에 들었는데 가격이 23 EURO다. 한참 망설이다 결국 샀다. 이번 여행의 유일한 슬로베니아 기념품이다.

시청사는 1484년 처음 세워졌고, 본래 재판소로 지어진 건물이다. 그러다 1718년 그레고르마체크에 의해 후기 바로크 양식과 고전 양식의 복합적인 건축 양식으로 다시 지어졌다. 일부는 일반인에게 무료로 개방되어 있는데, 그 공간에는 오래된 정원과 분수가 있고, 갤러리도 있다. 롭바 분수는 시청사 바로 광장 앞에 우뚝 서 있다. 프레셰렌 광장이 생기기 전까지는 류블랴나 시민들의 만남의 장소였던 곳이라고 한다.
 
현재 시청 앞 있는 롭바 분수는 복제품이라고 한다. 본래 진품은 2006년에 보수 후 국립 미술관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류블랴나를 대표하는 성당인 성 니콜라스 성당이 시청사 앞에 있다. 13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목조로 지어진 성당을 1701~1708년 ‘안드레아 푸조‘가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축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성당의 정면과 측면에 있는 2개의 청동 문 역시 1996년 교황 바오로 2세의 류블랴나 방문을 기념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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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내 눈높이에서 즐거움을 기대한다면 행복을 기대할 수 없다. 내가 만나는 그 순간에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마음을 여는 자세가 중요하지 않을까. 에둘러 비 오는 날씨라서 마음을 달래 본다. 그래도 이 또한 지나고 보면 잊을 수 없는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될 것이다. 겨울에 떠난 여행이라 차라리 하얀 눈이 내렸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발칸반도의 작은 나라 슬로베니아(SLOVENIA)는 나라 이름에 사랑 ‘Love’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 이는 수도인 류블랴나(Ljubljana)라는 도시 이름에도 '사랑한다.'라는 의미의 슬라브어 ‘Ljubit’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류블랴나는 만나는 순간부터 사랑하게 되는 도시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어쩌면 채널 tvN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도 이에 착안하여 촬영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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