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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동유럽

비 내리는 블레드 성(城)

by 훈 작가 2024. 6. 12.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블레드 호수를 떠난 투어버스는 불과 7분 정도 만에 블레드 성에 도착했다. 날씨는 반전의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바뀌었다. 빗방울이 거세지고 있다. 이럴 때 하는 말이 있다.
 
“하늘도 정말 무심하시지.”
 
겨울인데 차라리 눈이 내려야지. 하늘이 제정신이 아니다. ‘그나저나 어떡하지?’ 망설여지는 까닭은 카메라를 갖고 내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결국 어떡해야 할까, 하다가 카메라를 내려놓고 버스에서 내렸다.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임.

빗속으로 들어갔다. 블레드 성으로 들어가기 전에 매표소에서 잠시 대기했다. 인원 파악 때문이다. 인솔자와 매표소 직원이 성안으로 들어가는 인원수를 일일이 파악한 후, 성안으로 들어왔다. 인솔자가 우산을 든 채 모이라고 하는 음성이 수신기를 통해 들려왔다. 궂은 날씨 속에서도 인솔자는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가 블레드 성에 대한 내부와 투어 방법을 설명한 후, 화장실의 위치까지 알려 주었다. 팁으로 Photo Zone까지 알려 주고 인증사진을 찍은 다음 자유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Photo Zone으로 자리를 옮겼다. 차례로 휴대폰을 인솔자에게 건네주고 인솔자는 한 팀 한 팀씩 사진을 찍어주기 시작했다.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임.

나는 마지막 순번에 그에게 휴대폰을 넘겨주었다. 인솔자가 농담 삼아 화가 나셨냐고 나를 보고 웃음을 유도한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빵 터져 버렸다. 맞다. 어쨌거나 여행은 즐거워야 한다. 인솔자는 비 오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애써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려고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았다.
 
비가 내리는 성에서 내려다보이는 호수와 블레드 섬에 있는 성당이 그야말로 천상의 낙원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정말 몽환적인 풍경이다. 비구름과 섞인 안개가 호수 뒤 알프스의 산자락을 완전히 덮어 버렸다. 마치 속세를 벗어나 하늘로 날아 올라와 있는 기분이다. 내가 구름 위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임.

블레드 섬은 꿈속에서 나올 것 같은 동화 속 풍경이다. 성 아래로 보이는 호수 주변의 모든 풍경이 천하제일 절경이다. 비구름과 안개가 연출한 풍경이기 때문에 더 멋지다. 궂은 날씨지만, 오히려 여행객에게는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게 행운일지도 모른다. 마치 반전(反轉) 드라마의(反轉) 한 장면을 연출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우울했던 마음도 사라졌다. 다만, 원했던 사진은 담을 수 없다. 사진에 온 마음이 쏠려있었기에 하늘이 원망스러웠던 것은 어쩔 수 없다. 무심한 하늘을 탓하는 것도 부질없는 짓이다. 대신 스마트 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물론 카메라로 찍었으면 좋았겠지만, 이런 날씨라면 도긴개긴이라는 생각이 든다.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임.

 
블레드 성은 호숫가 수면에서 130m 높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지어져 있다. 이 성은 1004년 독일 황제 헨리 2세가 독일 국왕 시절 브릭센의 주교 아델베론에게 영지를 하사한 것을 기념해 지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탑만 있던 자리에 세워진 건축물로 중세 말에 탑이 추가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인솔자 설명에 의하면 이 성은 약 800년 동안은 유고 슬라브 왕가의 여름 별장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성(城)은 별장(別莊)으로도 사용되었다. 성(城)의 주인인 영주는 평민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청동기 시대부터 현재까지 블레드 지역 역사에 관해 전시해 놓은 박물관과 16세기 예배당, 테라스, 예쁜 식당과 대장간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임.

영화 해리포터에 나올 것 같은 마법의 성은 규모가 크지 않다. 성주를 위한 공간은 그리 넓어 보이지 않는다. 백성을 위한, 백성에 의한, 백성의 성처럼 보인다. 현재 이 성안에는 인쇄소, 갤러리, 꿀벌 집, 커피숍, 주전소, 와인 저장고가 있다. 관광 시즌에는 성안의 마당에서 전통 놀이와 연극도 열린다고 한다고 인솔자는 말했다.
 
드라마 <흑기사>에서 신세경이 앉아 커피를 마시던 장소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야외 레스토랑의 위치에 있던 곳의 테이블과 의자가 모두 한 곳에 치워져 있었다. 아마 비가 와서 손님을 맞을 수 없어 일시적으로 치운 듯했다. 아쉬운 나머지 눈을 성밖으로 돌렸다. 호수와 블레드 시내를 내려다보인다. 시선을 어디에 두어도 멋지지 않은 곳이 없다.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임.

사랑이 깊으면 이별의 슬픔은 애절하다. 그리고 그리움은 두고두고 가슴에 남는다. 연인 간의 사랑이 아닐진대 성을 떠나자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비 내리는 날 연인과 헤어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아마도 두고두고 평생 잊지 못할 아픈 추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을 수는 없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버스에 올랐다.
 
빗방울이 차창을 그으며 흘러내린다. 연인과 헤어진 날 비가 내리는 것처럼 은근히 겨울비가 내 마음을 적신다.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데 왜 이런지 모르겠다. 원래 비란 우수를 젖게 하는 감성이 있는 모양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도 지났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여행이 내게 주는 감성이 때론 내 마음 나도 모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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