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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동유럽

글루미 선데이

by 훈 작가 2024. 7. 1.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자그레브에서 헝가리 부다페스트까지는 5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정상적으로 도착하면 오후 1시 전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변수가 국경 통과 시간이다. 국경 통과가 지연되면 1~2시간은 그냥 날려버릴 수 있다고 인솔자가 말했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 했던 이유를 그가 설명한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국경을 통과하는데 소요된 시간이 40분밖에 안 걸렸다. 그 시간이 정확하게 오전 950분이었다.

 

차창 밖으로 끝없는 지평선 풍경이 펼쳐진다. 따분한 시간이 흘렀다. 여행객의 이런 분위기를 달래주려는 듯 인솔자는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Gloomy Sunday’라는 음악이었다. 그가 음악을 들려주기 전에 음악과 관련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괴테의 명작 젊은 베르테르의 죽음을 꺼내는 게 아닌가. 갑자기 무슨 얘기를 하려고 그러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베르테르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유명인이나 자신이 모델로 삼고 있던 사람 등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을 말하는 동조 자살(copycat suicide)을 의미하는 말이다. 1774년 출간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는 로테라는 여인을 사랑하지만, 약혼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실의와 고독감에 빠진 나머지 끝내 권총 자살로 마감하는 우울한 내용이다.

 

난 주인공을 이해할 수 없지만 베르테르에 공감한 젊은이들의 자살이 이후 급증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유럽 일부에서는 소설 발간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년 발간된 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젊은이들의 모방 자살이 잇따랐는데, 이러한 현상을 베르테르 현상이라고 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는 1974년 모방 자살에 베르테르 효과란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Gloomy Sunday’는 헝가리 천재 작곡가 레조 세레스의 작품이다. 그는 레스토랑에서 피아노를 연주했으며 유머가 풍부했고 왜소한 체구의 소유자였는데, 그에게는 아름다운 연인 헬렌이 있었다고 한다. 헬렌은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손꼽히는 미인이었다. 레조는 헬렌이 자신에게서 떠나자, 실연의 아픔을 견딜 수 없었다. 그때 작곡한 노래가 바로 ‘Gloomy Sunday’.

 

그는 이 곡을 작곡한 후 손가락이 점점 굳어져 마침내는 두 손가락만으로 피아노 연주를 해야 했고 악보조차 읽을 수 없었다고 한다. 고소 공포증이 있는 그는 미스터리하게도 고층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자살했는데, 마지막까지도 ‘Gloomy Sunday’을 듣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1935년 이 곡이 출시된 후 8주 만에 헝가리에서만 187명이 자살했고, 전 유럽과 미국에서도 수백 명이 자살했다고 한다.

 

하지만, 잇따른 사람들의 죽음과 음악이 관련이 있었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헝가리 정부는 ‘Gloomy Sunday’가 방송국에서 전파 타는 것을 중지시켰다고 한다. 이런 조치는 당시 사회적 분위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불행하게도 음악과 관련 없이 헝가리는 세계에서 자살률 1위 국가였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Gloomy Sunday’의 음울한 멜로디가 당 시대적 상황과 맞았던 모양이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1936430일 파리에서 일어났다. 세계적인 지휘자 레이 벤츄라가 이끄는 오케스트라 공연 때였다.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들은 선율에 대한 기대로 잔뜩 부풀어 있었다. ‘Gloomy Sunday’가 소개되고 연주가 시작되었다. 영혼을 파고들 듯 단조의 선율이 흐르는 순간 드럼 연주가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자신의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 스스로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객석에 앉아 있던 청중들은 경악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금관악기 연주자가 그의 뒤를 이어 스스로 가슴에 칼을 꽂았다. 곡이 끝난 후, 무대에 남아있는 단원은 제1 바이올린 연주자 한 사람뿐이었다. 그러나 그도 천장에서 내려진 줄에 목을 매 죽었다고 한다.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인솔자 설명을 듣고 나니 ‘Gloomy Sunday’가 어떤 음악인지 궁금했다. 이러한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영화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1999년 독일의 영화감독 롤프 쉬벨(Rolf Schubel)가 이 음악을 모티브로 한 영화를 만들었다.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촬영한 이 영화는 ‘Gloomy Sunday’란 제목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되었다고 하는데 나는 보지는 못했다. 기회가 되면 영화를 한번 봐야겠다.

 

설명이 끝난 후 음악을 들었다. 처음에는 설마 했다. 그런데 음악이 사람을 젖게 했다. 묘하게 빠져들고 젖어드는 음악이다. 주인공이 느꼈던 실연의 아픔이 마치 내가 겪은 것처럼 느껴졌다. 실연의 느낌을 어쩌면 이런 선율로 음악에 담았을까.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그리움에 젖고, 사랑에 실패한 실연의 아픔이 우울하게 만든다. 음악의 선율이 부른 죽음은 애처롭고 처연하기에 죽음을 부른 음악이었나 보다.

 

아픔이 아픈 것으로 끝나면 세상은 살맛이 나지 않는다. 살맛 나는 세상은 그런 아픔과 고통을 이겨내고 일어설 때 더욱 빛난다고 생각한다. 실연의 절망을 희망으로 만드는 힘이 누구에게나 있다. 사랑의 실패가 삶의 실패는 아니다. 실패는 하나의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다. 그게 인생이다. 다만, 실연의 아픔을 삶의 전부로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다.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달콤한 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자살이란 말은 의외의 반전이 있는 단어다. 거꾸로 읽으면 살자가 되기 때문이다. ‘Gloomy Sunday’ 죽음을 부를 만큼 강렬할 삶의 가치보다 나을 순 없다. 삶의 불꽃은 부단한 자기애()로부터 출발해야 행복하다. 자살은 자기애()의 포기일 뿐이다. 자기애()의 출발이 인생이다. 스스로 자신을 지키고 가꾸는 것이 사랑이다. ‘자살이란 단어가 떠오를 땐 생각을 뒤집어 반대로 읽으면 된다. 그게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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