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생은 여행이다/동유럽

‘두브로브니크’ 성벽 투어

by 훈 작가 2024. 10. 4.

두브로브니크   성벽 마을(출처 : pixabay)

두브로브니크 성벽은 구시가지를 직사각형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다. 남서쪽에는 보카르(Fort Bokar) 요새 남동쪽에는 성 요한 요새(St. JohnFortress)가 있으며, 북서쪽에는 민체타 타워(Minčeta Tower), 북동쪽에는 루카 타워(Kula Luca)가 있어 각각 성벽 모퉁이를 방어하고 있다.

 

성벽 길이는 약 2km로 해안 쪽 높이는 25m, 성벽 안쪽으로는 최고 6m나 된다. 성벽 두께는 바다 쪽으로는 1.5~3.0m나 되는데, 오스만 튀르크가 침공해 오기 전 13~14세기에는 성벽이 훨씬 이보다 얇고 낮았다고 한다. 성에는 4개의 요새가 세워져 있고 성벽 밖에 1개의 요새가 있다.

로브리에나츠 요새

가이드 설명에 따르면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고, 전쟁과 지진을 겪으면서 여러 번의 증개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서쪽 성벽으로 올라와 남서쪽에 있는 보카르(Fort Bokar) 요새에서 투어를 시작했다. 올라가는 계단이 좁고 가파르다 보니 한 줄로 올라가야 했다.

 

하늘이 맑다. 이보다 더한 하늘색이 있을까 싶다. 흩뿌려진 구름이 하얀 새털 같다. 성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을 보였다. 다시 하늘을 보았다. 빨간색 지붕과 하늘이 맞닿아 마치 음양의 조화를 이룬 것처럼 청홍의 빛을 이룬다. 우주의 원리 같은 색상의 조화가 참으로 절묘하고 오묘하게 어울린다.

플라차 거리 (Placa Stradun)

내려다보니 방금 걸어왔던 플라차 거리(Placa Stradun)의 반들거리는 대리석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보여준다. 카메라에 담고 보니 진주 보석을 깔아 놓은 듯 은은하고 멋스럽다. 그뿐 아니다. 거리 양쪽으로 늘어선 건물의 색도 그랬다. 버나드 쇼가 말 한 보석이 이 빛이라면  두브로브니크아드리아의 진주라는 표현이 맞다.

 

투어는 시작부터 막혔다. 사진 찍느라 일부 외국인 여행객들이 발걸음이 더디기만 하다. 어쩌랴 성질 급한 한국인에겐 짜증스러울 법하다. 줄지어 기다리는 걸 보면 포토 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느긋하게 따라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기다리다 보니 제일 먼저 앞서간 우리 일행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성벽마을 지붕

추측이 맞았다. 직사각형 모양의 성벽 창을 통해 보이는 Old Town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액자에 들어 있는 풍경을 만든다. 너도나도 그걸 찍느라 흐름이 막혔다. 초보자라도 그냥 찍으면 그림이 나오는 곳이다. 그냥 갈 수 없어 나도 찍었다. 성벽 마을 풍경이 액자에 담은 것처럼 보였다.

 

버나드 쇼의 말이 생각났다. ‘삶이란 우물쭈물하다 그럭저럭 살다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꾸는데 우물쭈물하며 먹고살기 바쁜 게 세상살이일지도 모른다.’ 공감 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버나드 쇼의 표현에 어떤 정서가 있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우물쭈물이란 말이 정곡을 찌른다.

성벽마을 안내도

그렇다. 대부분의 인생이 우물쭈물하다 보면 삶의 종착역에 오는 것이 아닐까. 우물쭈물하는 시간이 문제다. 끝이 안 보일 것 같은 인생, 어느 날 갑자기 깨닫게 된다. 지난날의 시간을 되돌아보면 밀려드는 인생의 허무함을. 얼마 남지 않은 모래시계를 보며 무엇을 해야 할 까, 내게 묻는다. 남은 삶이라도 덜 후회하도록 살자.

 

오른쪽에 성벽이 보였다. 난공불락의 요새로 보이는 건 로브리에나츠 요새로 성 로렌스 요새(St. Lawrence Fortress)라고도 부른다. 바다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막고 필레문(Pile Gate) 방어를 위해 바다가 보이는 37m 높이의 암벽 위에 세운 요새로 해수면에 맞닿아있는 벽두께는 무려 12m이지만 지면에 닿아있는 벽은 60cm 두께에 불과하다.

성벽길에 투어 중인 관광객

이렇게 만든 이유는 로브리예나츠 요새가 적들에게 빼앗길 경우를 대비해 도시에 배치된 다른 대포를 이용해 요새 벽을 쉽게 무너뜨리기 위해서였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11세기에 베네치아가 두브로브니크를 정복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요새를 지으려 했는데 이걸 알게 된 시민들이 도시를 지키기 위해 3개월 만에 완공했다고 한다.

 

요새가 완성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베네치아에서 실제로 건축 자재를 싣고 오는 배들이 들어왔으나 이미 요새가 완성된 것을 보고 되돌아갔으며 이때부터 로브리예나츠(St. Lawrence Fortress) 요새는 베네치아로부터 <두브로브니크>를 지켜주는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요새는 11~14세기에 여러 단계를 거듭하여 15세기에 완성되었고 한다.

 

입구에 라틴어로 이런 문구가 있다고 한다. “Non bene pro toto Libertas venditur aura.” (자유는 세상 그 어떤 진귀한 보물로도 살 수 없다)”

아드리아해 쪽 성벽

좁은 성벽 길을 따라 오르막길을 걷듯이 올라갔다. 왼쪽으로 옹기종기 들어앉은 빨간색 집들이 머리를 맞대고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오른쪽에 아드리아해가 있다. 깎아지른 바닷가 절벽 위에 세워진 성벽은 중세 시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 모습이 이곳을 찾은 여행객의 눈에는 탄성을 자아내는 멋진 풍경이다.

 

하지만 역사 속으로 뛰어들면 삶의 자유를 지키고자 했던 싸움이기도 한 전쟁터였을 것이다. 자유를 지키느냐, 아니면 속박과 굴욕의 삶을 사느냐 하는 절박한 싸움이 있었을 것이다. 자유는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다. 이곳의 행복은 지금의 역사를 지켜낸 두브로브니크의 눈물겨운 투쟁으로 이루어낸 것이다.

성벽 투어 길

고통과 눈물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이곳이 아름다운 것은 고통과 눈물을 상징하는 역사적 산물이다. 중세의 건물들이 전주의 한옥마을처럼 잘 보존되어 있다. 성벽이 둘러싸고 있는 풍경은 여행자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다. 빨간색 지붕과 잘 어울리는 하얀 집들이 낯선 이방인에게는 상당히 매력 있게 느껴진다.

 

여행은 감성을 자극하는 한 편의 문학 장르 같다. 여행이란 단어를 현실에서 만나면 마음은 항상 여유롭고 너그럽다. 때로는 시인처럼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공감의 언어를 찾고자 상념에 빠지기도 한다. 혹은 낭만 가객처럼 깊은 사색 속에 인생과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철학자의 눈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기도 한다.

망루에서 본 성벽

여행자가 누리는 자유가 바로 그런 것 아닌가 싶다. 여행의 매력은 무한 상상에 빠지고 자유롭게 햇빛을 받으며 노래하고 시인이 되어보는 자유를 만끽한다. 여행은 자체로 행복이고 자유다. 그것을 즐기려고 떠난다. 떠나서 자유를 즐기고 오감으로 느낀다. 그렇게 보면 여행은 인생을 풍요롭게 해 주는 훌륭한 교사다.

 

흔히 해외 유명 관광명소를 사진으로만 보면 너무 멋지다. 그런데 시즌에 가 보면 너무 다르다. 야기도 성수기였더라면 인파에 밀려 여유롭게 성벽을 걸어 다니지 못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한가롭게 사색의 시간을 갖고 여유로움도 즐기면서 걷는 성벽 투어가 적어도 비수기 시즌에는 여행자의 특권인 양 자유를 만끽하게 만든다.

아치형 골목길과 고양이

성벽의 둘레는 약 2km. 성벽 투어의 1/2에 해당하는 지점에 도착했다. 느긋하게 투어를 즐기면서 오다 보니 앞서간 일행 보이질 않았다. 성벽 전체 한 바퀴를 완주해야 할지,, 말지 망설여졌다. 바로 그 지점에 인솔자가 서 있었다. 전 구간을 구경하다 보면 성벽 안 마을을 둘러보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내에게 물었다. 성벽 마을 뒷골목 풍경도 구경하면서 기념품 가게도 들러 보잔다. 아쉽지만 성벽 투어는 1/2 지점에서 끝내기로 했다. 계단을 따라 내려오니 아치형 터널처럼 생긴 골목이다. 로마 시대 중세 영화에 나올 법한 길이다. 인기척 없는 길을 걷다가 담장 위에 고양이 한 마리가 날 본다.

골목길 풍경

내비게이션이 필요할 것 같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길을 잃어버릴 것 같지는 않다. 카페, 기념품 가게, 창가에 걸린 빨래, 내가 알고 있는 골목이 아니다. 경계의 눈초리로 긴장해야 하는 그런 골목과 거리가 멀다. 감성적인 시각으로 보면 낭만적이다. 고풍스러운 중세 분위기가 묻어나서 그런지 모른다.

 

다시 플라차 거리(Placa Stradun)로 내려왔다. 안 보이던 사람이 보였다. 성벽 마을의 메인 스트리트라 역시 달랐다. 두브로브니크에 오면 꼭 해야 한다는 성벽 투어를 마무리했다. 항상 끝은 아쉬움이다. 하지만 후회 없는 시간이었다. 아내와 난 다시 성벽 마을 뒷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인생은 여행이다 > 동유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인 도시 '류블랴나'  (38) 2024.08.28
글루미 선데이  (105) 2024.07.01
‘세체니 다리’를 바라보며  (115) 2024.06.28
비 내리는 블레드 성(城)  (98) 2024.06.12
블레드 호수  (16) 2024.06.01

댓글